2013년 12월 5일 목요일

국립국어원의 일방적 대화 단절

오랜 기간에 걸친 국립국어원과의 문답이 끝이 났습니다. 국립국어원의 결론은, "규정이고 뭐고 국립국어원 맘대로 '새너제이'라고 쓰는 게 맞고, 더이상 할 말 없다"입니다. 아래 문답을 모아놨으니 국립국어원의 답변을 직접 보시고 싶은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San Jose 표기법 관련 국립국어원과의 문답 모음


간단하게 제 주장을 아래에 다시 요약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가 맞고 누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지, 글을 읽는 분들이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새너제이' 표기는 외래어 표기 규정을 위배하고 있다. 

San Jose는 두 단어로 이루어진 지명이므로, 해당 외래어 표기 규정에 따라 단독으로 쓰일 때의 표기대로 적어야 한다. (외래어 표기 규정 제3장 제1절 제10항)

제10항복합어(3)

1. 따로 설 수 있는 말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어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말이 단독으로 쓰일 때의 표기대로 적는다.

  • cuplike[kʌplaik] 컵라이크
  • bookend[bukend] 북엔드
  • headlight[hedlait] 헤드라이트
  • touchwood[tʌtʃwud] 터치우드
  • sit-in[sitin] 싯인
  • bookmaker[bukmeikə] 북메이커
  • flashgun[flæʃgʌn] 플래시건
  • topknot[tɔpnɔt] 톱놋

2. 원어에서 띄어 쓴 말은 띄어 쓴 대로 한글 표기를 하되, 붙여 쓸 수도 있다.

  • Los Alamos[lɔs æləmous] 로스 앨러모스/로스앨러모스
  • top class[tɔpklæs] 톱 클래스/톱클래스

San은 '샌', Jose은 '호세' 혹은 '호제이'로 적을 수 있으므로, San Jose는 '샌호세' 혹은 '샌호제이'로 적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 10항의 2를 따를 방법이 없다. '새너제이'를 원어에서 띄어 쓴 대로 한글 표기를 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새 너제이'? '새너 제이'? 따라서 위 표기 원칙을 위배하고 San Jose를 붙여서 연음 처리한 '새너제이'라는 표기는 틀렸다. 새너제이라는 발음이 맞다면, 맞는 표기법은 '새너제이'가 아니라 '샌어제이'다. 물론 Jose를 '어제이'라고 적는다는 가정하에.

2. San Jose의 발음은 '새너제이'가 아니다.

원어민이 water를 '워러'에 가깝게 발음한다고 해서 한국어로 '워러'로 적지는 않는다. 한글 표기법은 흘려서 내는 발음이 아니라, 또박또박 읽을 때의 원래 발음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귀에 들리는 발음이 아니라 발음기호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롱맨 발음 사전에 [sӕnəzéi]로 되어 있고, 그걸 따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온라인 롱맨 사전에는 /ˌsæn hoʊˈzeɪ/로 되어 있고, 위키피디아에도 /ˌsæn hoʊˈzeɪ/로 발음을 표시하고 있다. 둘 중 어느 발음이 맞는 발음인지 논란이 있다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가능한 많은 사전을 조사하여 주 발음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리고 [sӕnəzéi]는 /ˌsæn hoʊˈzeɪ/를 흘려서 발음한 것이라 설명이 가능하므로, /ˌsæn hoʊˈzeɪ/를 기준 발음으로 삼는 것이 논리적이기도 하다.

사전을 떠나 실제 발음은 구글에서 "how to pronounce san jose?"로 검색해 보면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모두가 "샌호제" 혹은 "샌호제이"에 가깝게 발음하고 있고, "새너제이"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제가 더이상 국립국어원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피해 본 일이 없으니 행정소송을 할 수도 없고... 똥고집을 부리겠다는데 말릴 방법이 없네요. 아마 저를 귀찮은 똥파리 정도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저는 일단 여기까지 하렵니다. 뭐 사실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구요. 좀 보기 싫을 뿐, 새너제이라고 쓴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죠. ^^ 논리적인 설득을 통해 의도했던 결과를 얻지 못해서 아쉽지만, 뭐 언젠가는 바뀌지 않겠습니까?

2013년 11월 6일 수요일

체계적인 미루기 - 미루기쟁이가 많은 성과를 내는 방법

오늘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되었는데, 나와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지는 내용이라 전문을 번역해 볼까 한다. 저자가 이 내용으로 책도 냈고, 찾아보니 이미 한국에 번역서도 나와 있다.

원문은 여기: http://www.structuredprocrastination.com/

Structured Procrastination
체계적인 미루기

``. . . anyone can do any amount of work, provided it isn't the work he is supposed to be doing at that moment." -- Robert Benchley, in Chips off the Old Benchley, 1949
"누구나 얼마든지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그게 그 순간에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면 말이다."

I have been intending to write this essay for months. Why am I finally doing it? Because I finally found some uncommitted time? Wrong. I have papers to grade, textbook orders to fill out, an NSF proposal to referee, dissertation drafts to read. I am working on this essay as a way of not doing all of those things. This is the essence of what I call structured procrastination, an amazing strategy I have discovered that converts procrastinators into effective human beings, respected and admired for all that they can accomplish and the good use they make of time. All procrastinators put off things they have to do. Structured procrastination is the art of making this bad trait work for you. The key idea is that procrastinating does not mean doing absolutely nothing. Procrastinators seldom do absolutely nothing; they do marginally useful things, like gardening or sharpening pencils or making a diagram of how they will reorganize their files when they get around to it. Why does the procrastinator do these things? Because they are a way of not doing something more important. If all the procrastinator had left to do was to sharpen some pencils, no force on earth could get him do it. However, the procrastinator can be motivated to do difficult, timely and important tasks, as long as these tasks are a way of not doing something more important.
나는 몇달간 이 에세이를 쓰려고 했었다. 어떻게 지금 마침내 이걸 쓰고 있을까? 마침내 한가한 시간을 찾았기 때문에? 틀렸다. 점수를 매겨야 하는 과제들, 주문해야 하는 교과서 목록, 심사해야 하는 NSF 제안서, 읽어야 하는 학위논문 초안들이 쌓여 있다. 나는 이 에세이를, 이런 모든 일들을 하지 않기 위해서 쓰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체계적인 미루기"라고 부르는, 미루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많은 일을 성취하며 오히려 시간을 효과적으로 쓴다고 존경과 찬사를 받는 사람으로 바꿔놓는 놀라운 전략의 핵심이다. 모든 미루기쟁이들은 해야만 하는 일들을 뒤로 미룬다. 체계적인 미루기는 이러한 나쁜 버릇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기술이다. 핵심 아이디어는, 미룬다는 것이 아무것도 안하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그들은 어느정도 쓸모있는 일들, 예를 들어 정원을 손질한다든지 연필을 깎는 일, 혹은 파일을 재정렬하기 위해 다이어그램을 그린다든지 하는 일들을 한다. 이들이 왜 이런 일을 할까? 그건 그 일들이 더 중요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미루기쟁이들이 해야 할 일이 순전히 연필을 깎는 일밖에 없다면, 이들은 절대로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루기쟁이들은 더 중요한 일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어렵고, 급하고 중요한 일들도 하도록 동기부여될 수 있다.

Structured procrastination means shaping the structure of the tasks one has to do in a way that exploits this fact. The list of tasks one has in mind will be ordered by importance. Tasks that seem most urgent and important are on top. But there are also worthwhile tasks to perform lower down on the list. Doing these tasks becomes a way of not doing the things higher up on the list. With this sort of appropriate task structure, the procrastinator becomes a useful citizen. Indeed, the procrastinator can even acquire, as I have, a reputation for getting a lot done.
체계적인 미루기는 이러한 사실을 활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야 할 일들을 체계화하는 것이다. 할 일의 목록은 머리 속에서 중요도에 따라 정렬될 것이다. 가장 급하고 중요해 보이는 것이 맨 위에 위치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가치있는 일들도 목록 중간 어디쯤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하는 것은 목록의 더 위에 있는 일들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이런 식으로 적절히 할 일을 체계화한다면, 미루기쟁이들도 가치있는 시민이 될 수 있다. 사실, 미루기쟁이도 내가 그런 것처럼, 오히려 많은 일을 해낸다는 평판을 얻을 수 있다.

The most perfect situation for structured procrastination that I ever had was when my wife and I served as Resident Fellows in Soto House, a Stanford dormitory. In the evening, faced with papers to grade, lectures to prepare, committee work to be done, I would leave our cottage next to the dorm and go over to the lounge and play ping-pong with the residents, or talk over things with them in their rooms, or just sit there and read the paper. I got a reputation for being a terrific Resident Fellow, and one of the rare profs on campus who spent time with undergraduates and got to know them. What a set up: play ping pong as a way of not doing more important things, and get a reputation as Mr. Chips.
내가 경험했던 가장 이상적인, 체계적인 미루기의 상황은 아내와 내가 스탠퍼드 기숙사의 사감교수로 일했을 때였다. 과제 채점, 강의 준비, 위원회 활동 등이 밀려 있는 저녁에, 나는 집을 나와 라운지로 가서 학생들과 탁구를 치거나 그들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니면 그냥 거기 앉아서 뭘 읽곤 했다. 덕분에 나는 끝내주는 사감 교수, 학부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그들을 이해하는 몇 안되는 교수라는 평판을 얻었다. 멋진 설정 아닌가. 중요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탁구를 치고, 미스터 칩스 (Mr. Chips - "Goodbye, Mr. Chips"라는 단편소설의 주인공으로 학생들로부터 사랑받는 교사) 라는 평판을 얻다니 말이다.

Procrastinators often follow exactly the wrong tack. They try to minimize their commitments, assuming that if they have only a few things to do, they will quit procrastinating and get them done. But this goes contrary to the basic nature of the procrastinator and destroys his most important source of motivation. The few tasks on his list will be by definition the most important, and the only way to avoid doing them will be to do nothing. This is a way to become a couch potato, not an effective human being.
미루기쟁이들은 종종 완전히 틀린 길을 따라간다. 해야 할 일이 적다면 그들의 미루는 버릇을 끝내고 일을 마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가급적 해야 할 일을 최소화하려 든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그들의 미루는 본성과 반대로 가게 되어, 그들의 가장 중요한 동기부여의 근원을 잃게 된다. 할 일 목록에 가장 중요한 일들만 남게 되면, 그것들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소파에서만 뒹굴거리는, 비생산적인 사람이 되는 길이다.

At this point you may be asking, "How about the important tasks at the top of the list, that one never does?" Admittedly, there is a potential problem here.
이 시점에서 아마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럼 목록의 가장 위에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영원히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 사실 여기에는 잠재적인 문제가 있다.

The trick is to pick the right sorts of projects for the top of the list. The ideal sorts of things have two characteristics, First, they seem to have clear deadlines (but really don't). Second, they seem awfully important (but really aren't). Luckily, life abounds with such tasks. In universities the vast majority of tasks fall into this category, and I'm sure the same is true for most other large institutions. Take for example the item right at the top of my list right now. This is finishing an essay for a volume in the philosophy of language. It was supposed to be done eleven months ago. I have accomplished an enormous number of important things as a way of not working on it. A couple of months ago, bothered by guilt, I wrote a letter to the editor saying how sorry I was to be so late and expressing my good intentions to get to work. Writing the letter was, of course, a way of not working on the article. It turned out that I really wasn't much further behind schedule than anyone else. And how important is this article anyway? Not so important that at some point something that seems more important won't come along. Then I'll get to work on it.
해결책은 올바른 종류의 일들을 목록의 첫머리에 놓는 것이다. 여기에 딱 들어맞는 일은 두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그것들은 명확한 데드라인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사실상은 그렇지 않다.) 둘째, 아주아주 중요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행히도, 인생은 그런 일들로 가득하다. 대학교에서는 대부분의 업무가 이 범주에 해당되며, 아마도 대부분의 다른 기관들도 동일하리라 믿는다. 지금 내 목록의 맨 위에 있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언어철학 분야의 출판물을 위한 에세이를 끝내는 것이다. 이것은 11개월 전에 끝냈어야 하는 일이다. 나는 이것을 하지 않기 위해, 그동안 어머어마하게 많은 중요한 일들을 해냈다. 두어달 전에 나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편집자에게 내가 마감을 지키지 못해 얼마나 미안해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일을 얼마나 하고 싶어하는지 적은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쓴 것 역시, 물론 에세이를 쓰지 않기 위해서였다. 알고보니 사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다들 마감을 지키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 에세이가 사실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어느 시점엔 더 중요한 일이 생길 테고, 그 때가 되면 난 이걸 쓰기 시작할 것이다.

Another example is book order forms. I write this in June. In October, I will teach a class on Epistemology. The book order forms are already overdue at the book store. It is easy to take this as an important task with a pressing deadline (for you non-procrastinators, I will observe that deadlines really start to press a week or two after they pass.) I get almost daily reminders from the department secretary, students sometimes ask me what we will be reading, and the unfilled order form sits right in the middle of my desk, right under the wrapping from the sandwich I ate last Wednesday. This task is near the top of my list; it bothers me, and motivates me to do other useful but superficially less important things. But in fact, the book store is plenty busy with forms already filed by non-procrastinators. I can get mine in mid-Summer and things will be fine. I just need to order popular well-known books from efficient publishers. I will accept some other, apparently more important, task sometime between now and, say, August 1st. Then my psyche will feel comfortable about filling out the order forms as a way of not doing this new task.
또다른 예는 책 주문서다. 지금은 6월이고, 나는 10월에 인식론에 대한 수업을 할 예정이다. 이 책 주문서는 이미 서점의 시한을 넘겼다. 데드라인에 대한 압박 때문에, 이 일은 쉽게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미루기쟁이가 아닌 분들을 위해, 나는 진짜 데드라인의 압박은 시한을 한두 주 넘긴 이후에 시작된다고 본다.) 나는 거의 매일 학과 비서로부터 독촉을 받고 있고, 학생들은 종종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물어보고, 빈 주문서는 내 책상 한 가운데, 정확히 어제 내가 먹은 샌드위치 포장지 아래에 놓여 있다. 이 일은 내 할 일 목록 거의 최상위에 위치해 있고, 나를 불편하게 하며, 이걸 피하기 위해 다른 유용하고 겉으로 덜 중요해 보이는 다른 일을 하도록 나를 동기부여시킨다. 하지만 사실상, 서점은 이미 미루기쟁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보낸 주문서로 충분히 바쁘다. 나는 한여름에 책을 받을 수 있고 그러면 문제 없을 것이다. 단지 효율적인 출판사에서 나온 인기있는 유명한 책을 주문하면 된다. 나는 아마 지금부터 8월 1일 정도 사이에, 명백히 더 중요한 다른 어떤 일들을 하기로 약속할 것이다. 그때쯤엔 아마 내 심리가, 이 새로운 일을 하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주문서를 쓰는 것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The observant reader may feel at this point that structured procrastination requires a certain amount of self-deception, since one is in effect constantly perpetrating a pyramid scheme on oneself. Exactly. One needs to be able to recognize and commit oneself to tasks with inflated importance and unreal deadlines, while making oneself feel that they are important and urgent. This is not a problem, because virtually all procrastinators have excellent self-deceptive skills also. And what could be more noble than using one character flaw to offset the bad effects of another?
주의 깊은 독자라면 이 시점에서 아마 체계적인 미루기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속여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사실상 자기 스스로에 대해 계속해서 피라미드 사기를 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하다. 어떤 일들에 대해 한편으로는 그것들이 정말 중요하고 급하다고 스스로 믿게 만들면서, 또한 과장된 중요도와 사실이 아닌 데드라인을 감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건 문제될 게 없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미루기쟁이들은 자기를 속이는 데도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의 성격상 결함을 다른 결함의 나쁜 결과를 상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보다 더 고귀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이 글의 저자와 같이 명확히 짚어내지는 못했지만, 나도 사실상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을 보면, 마감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을 울면서(?) 했던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일들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른 많은 일들을 했던 것 같다. 사실상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체가, 더 중요한 일들, 예를 들어 테크니들에 글 쓰는 걸 피하기 위해서이다. 정말 중요한 일부터 차례대로 순서대로 하라는 일반적인 성공방정식(?)과는 다른 방향이지만, 정말 체계적으로 잘 활용할 경우 나와 같은 미루기쟁이들에게 정말 유용한 방법이 될 것 같다. 앞으로 잘 써먹어야겠다.

2013년 9월 24일 화요일

California Dreaming 가사와 해석

일하며 흘러간 팝송을 듣는데 California Dreaming이란 노래가 나왔다. 마침 오늘 날씨도 캘리포니아가 생각나는 날이라 기분좋게 듣고 있는데 가사가 잘 이해가 안되는 거다. 사실 가사를 주의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교회가 어쩌고 기도가 어쩌고 하는데 그런 가사가 있는 줄은 전혀 알지도 못했다. 아마 어릴 때 내 듣기 실력이 워낙 안좋았기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가사를 찾아봤다.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ay
I've been for a walk on a winter's day
I'd be safe and warm if I was in L.A.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Stopped in to a church I passed along the way
Well I got down on my knees and I pretend to pray
You know the preacher liked the cold
He knows I'm gonna stay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ay
I've been for a walk on a winter's day
If I didn't tell her I could leave today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추운 날 따뜻한 캘리포니아를 그리워하는 내용인 줄은 대충 알겠는데 군데군데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거다. 특히 중간에 "You know the preacher liked the cold. He knows I'm gonna stay" 이 부분과 마지막에 "If I didn't tell her I could leave today" 부분이 문맥상도 그렇고 무슨 뜻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목사님이 왜 추위를 좋아하는 건가? 그가 내가 머무를 거라는 걸 안다는 건 또 뭔가? 그리고 그녀는 누구고 어딜 떠난다는 건가?

구글과 네이버에서 한글 해석을 검색해 봤지만 대부분 그냥 가사 그대로 번역을 해 놓았을 뿐 (오역을 포함해서) 그게 무슨 뜻인지 고민해 가며 번역하거나 해설한 글은 찾기 어려웠다.

다시 구글에서 영어로 가사를 풀어 해석해 놓은 곳이 있는지 찾아본 결과, 여기에서 만족할 만한 답변을 찾았기에 아래에 옮겨 본다. 그리고 내 해석도 덧붙인다.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ay     잎들은 모두 갈색이고 하늘은 회색이네
>I've been for a walk on a winter's day                나는 겨울날에 걸어가는 중이지
>I'd be safe and warm if I was in L.A.                 LA에 있었더라면 안전하고 따뜻했을텐데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이런 겨울날 캘리포니아를 꿈꾸네

[I was out walking on a gloomy winter day]
나는 우울한 겨울날 밖에서 걷고 있는 중이었다.
[I realized if I was in sunny LA I'd be warm and comfortable] 
만약 화창한 LA에 있었더라면 따뜻하고 편안했을 거란 걸 깨달았다.

>Stopped in to a church I passed along the way  지나는 길에 있는 교회에 들렸지
>Well I got down on my knees and I pretend to pray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척 하지
>You know the preacher liked the cold                목사님은 그 추운 날씨를 좋아했지
>He knows I'm gonna stay                                 내가 머무를 거라는 걸 알거든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이런 겨울날 캘리포니아를 꿈꾸네

[To get out of the cold, I stopped in a church and knelt pretended to pray.]
추위를 피하려고, 나는 한 교회로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척 했다.
[The pastor is pleased that the cold weather is draws people into his church.] 
목사님은 추운 날씨가 사람들을 그의 교회로 들어오게 만들기 때문에 기뻤다.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ay     잎들은 모두 갈색이고 하늘은 회색이네
>I've been for a walk on a winter's day                나는 겨울날에 걸어가는 중이지
>If I didn't tell her I could leave today                  그녀에게 말하지만 않는다면 오늘이라도 떠날 수 있을텐데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이런 겨울날 캘리포니아를 꿈꾸네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이런 겨울날 캘리포니아를 꿈꾸네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이런 겨울날 캘리포니아를 꿈꾸네

[I was out walking on a gloomy winter day thinking of sunny LA]
나는 우울한 겨울날 화창한 LA를 생각하며 밖에서 걷고 있는 중이었다.
[I knew I could just pull up stakes and leave for LA today, but if I told my S.O. she wouldn't let me go]
나는 오늘이라도 짐을 꾸려서 LA로 떠날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 반려자(S.O. = Significant Other)에게 말한다면 그녀는 나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But I kept thinking of sunny LA on that gloomy winter day]
하지만 나는 우울한 겨울날 계속해서 화창한 LA를 생각했다.

갑자기 교회에 왜 들어가서 기도하는 척 하는지, 목사님이 추위를 왜 좋아하는지는 명확하게 이해가 됐지만, 여전히 좀 애매한 부분은 "If I didn't tell her I could leave today"의 해석이다. 일단, 과거형을 썼으므로 과거의 사실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가정법에서 과거형은 과거 사실의 반대를 가정하는 게 아니라 현재 사실의 반대를 가정하는 용법이다. 과거 사실의 반대, 즉 "만약 내가 그녀에게 말하지만 않았더라면"이란 뜻이라면 과거 분사를 써서 "If I hadn't told her"라고 해야 한다. 반대로 "만약 내가 그녀에게 말하지 않는다면"이라면 미래에 일어날 일을 가정하는 것이므로 현재형으로 "If I don't tell her"라고 해야 한다. 그럼 "If I didn't tell her"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첫번째 가능성은 노래 가사에서 문법은 무시하고, 그냥 과거 사실을 반대로 가정하는 표현을 그렇게 썼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 그녀에게 이미 말을 했고, 그것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것이 된다. 그녀에게 사랑의 고백이나 결혼하자는 프로포즈나 아무튼 무엇인가 중요한 책임질 말을 했고, 그것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LA에 가겠다고 말했는데 그녀가 완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못 가는 것일 수도 있다.

두번째 가능성은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이므로 과거형을 썼다고 보는 것이다. 즉 내가 그녀에게 말할 것이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지만, 만에 하나 말하지만 않는다면, 그녀 몰래 떠날 수도 있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이 경우는 떠나고 싶다는 사실, 떠난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두번째 해석이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어차피 노래 가사이고 일종의 시이니 어떤 해석이 꼭 맞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지도. 아래는 영화 중경삼림에 삽입된 California Dreaming.

추가 (2019.1.13) : 그냥 가정법 과거가 꼭 현재의 반대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의 사실을 가정하는데도 쓰이네요. 그리고 꼭 일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뉘앙스라기보다도, 그냥 순수한 가정을 내포하는 것으로 보면 되구요. 실제로 많이 쓰이는 용법인 듯 합니다. 



2013년 9월 12일 목요일

San Jose 표기법 관련 국립국어원과의 문답 모음

지난달 말부터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http://www.korean.go.kr/09_new/minwon/qna_view.jsp)를 통해 국립국어원과 주고받은 문답을 아래 모았습니다. 각 문답에 대해 URL을 바로 얻을 수 없게 되어 있어 링크를 걸지 못했습니다. 혹시 방법을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단어로 된 영어 지명 표기등록일2013.08.28.
작성자박정훈조회수28
San Jose, Los Angeles와 같이 두 단어로 된 영어 지명 표기는 각 단어로 구분하여 적되 붙여서 적을 수도 있는 것이 원칙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글 표기는 대개 붙여서 한단어로 표준이 정해진 경우가 많은데요, 그러다보니 San Jose의 경우는 아예 단어 사이를 연음을 시켜 '새너제이'라고 표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궁금한 것은, 이와 같이 각 단어를 구분하여 표기하지 않고 두 단어 사이에 연음을 시킨 표기가 '새너제이' 외에 또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런 경우가 몇 건이나 되는지, 건수가 많지 않다면 전체 사례를 알려주시고, 건수가 너무 많다면 전체 건수와 대표적인 예를 대여섯개 정도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각 경우에 왜 그렇게 연음하여 표기하였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덧붙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제목: 외래어 표기
작성자온라인가나다답변일자2013.08.29.
안녕하십니까?
영어의 한글 표기는 원어의 발음을 고려하여 정해집니다. 문의하신 ‘San Jose’를 ‘새너제이’와 같이 적은 것도 “롱맨영어사전”에 올라 있는 미국 대표 발음에 따른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영어 복합어(합성어)의 표기에 대하여 보기와 같은 규정만 두고 있습니다.
<보기>
제10항 복합어
1. 따로 설 수 있는 말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어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말이 단독으로 쓰일 때의 표기대로 적는다.
cuplike[k?plaik] 컵라이크
bookend[bukend] 북엔드
headlight[hedlait] 헤드라이트
touchwood[t?t?wud] 터치우드
sit-in[sitin] 싯인
bookmaker[bukmeik?] 북메이커
flashgun[flæ?g?n] 플래시건
topknot[t?pn?t] 톱놋

두 단어로 된 영어 지명 표기등록일2013.08.30.
작성자박정훈조회수23
지난 질문에 빠른 답변 감사합니다만 제 질문과는 거리가 있는 답변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San Jose를 왜 새너제이라고 표기하는지 물은 것이 아닙니다. 그에 대한 답변은 이미 여러번 들었습니다.

정확하게 다시 묻습니다. 아래 물음에 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가지 질문을 더 추가했습니다.

1. San Jose를 롱맨 영어사전의 발음대로 "새너제이"라고 표기한다면, 단어별로 보자면 아마 San => "샌", Jose => "어제이" 이렇게 나누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샌어제이"라고 적지 않고 "새너제이"라고 'ㄴ'을 다음 단어의 첫음절로 연음하여 표기하였는데, 이와 같이 두 단어로 이루어진 영어권의 지명, 인명을 마치 한 단어인 것처럼, 앞단어의 마지막 자음을 다음 단어의 첫음절로 연음을 시켜 발음대로 표기한 사례가 있는지요? 있다면 그 사례를 조사하여 나열해 주시기 바랍니다.

2. San Antonio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ˌsænænˈtoʊni.oʊ/로 발음기호가 표기되는데, 롱맨 영어사전은 조금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대동소이하리라 생각됩니다. 이 도시의 표기를 "새너제이"와 같이 발음대로 "새낸토니오"로 적지 않고 "샌안토니오"로 적은 이유는 무엇인지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최고의 국어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립국어원으로서, 표기 원칙에 대한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답변을 해 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답변 제목: 외래어 표기
작성자온라인가나다답변일자2013.09.03.
안녕하십니까?
영어를 한글로 적을 때 적용하는 원칙은, 원어의 발음을 '외래어 표기법' 제2장 표 1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 제3장 표기 세칙 제1절 영어의 표기에 비추어 적는 것입니다.
San Jose와 San Antonio를 한글로 적을 때 기준이 되는 발음은 각각 [sӕnəzéi], [sӕn ӕntóuniòu]인데, 전자와 같이 원어의 발음에서 이어 읽는 것은 그 발음을 기준으로 하여 이어서 적고, 후자와 같이 원어의 발음에서 끊어 읽는 것은 그에 따라 구별하여 적습니다.(다만, 외국 지명, 인명, 고유 명사에서 ‘Las, Los, New, San’ 등 국어의 접사처럼 생산적으로 결합하는 단위가 있는 것은 원어에서 띄어 썼더라도 붙여 쓰는 관용에 따라 적습니다.) 이에 따라 San Jose[sӕnəzéi]는 '새너제이'로 적고, San Antonio는, [sӕn ӕntóuniòu]로 발음되지만, 미국 텍사스 주 남부의 상공업 도시인 San Antonio는 관용적으로 [sӕn antóuniòu]로 발음됨을 고려하여, '샌안토니오'로 적습니다.

두 단어로 된 영어 지명 표기등록일2013.09.03.
작성자박정훈조회수38
답변 감사합니다만, 정작 제가 알고 싶었던 부분은 아직 답변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질문합니다.

San Jose와 같이 '원어의 발음에서 이어 읽는 것은 그 발음을 기준으로 하여 이어서 적고'라고 하셨는데, San Jose 외에 그렇게 '원어의 발음을 기준으로 하여 이어서 적은' 사례를 실례로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적는다고 하면 또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단어를 띄어 쓰고 붙여 쓰고의 문제가 아니라, 앞 음절의 마지막 자음을 다음 음절로 넘겨서 연음하여 적은 사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벌써 세번째 같은 질문인데, 그러한 사례가 San Jose 외에는 한 건도 없다면 없다고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답변 제목: 외래어 표기 [알림] [답변 완료]
작성자온라인가나다답변일자2013.09.04.
안녕하십니까?
지난 질의에서는 표기 원칙을 물으셨고, 그리하여 그에 대해 답변한 바가 있습니다. 요청하신 바와 관련하여 말씀드리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를 정해 놓은 용례집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만(국립국어원 누리집 자료실), San Jose[sӕnəzéi]와 같은 유형의 지명 표기 목록만 따로 모은 자료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어문연구팀(02-2669-9715)에 확인을 한 후, 결과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2차 답변은 아래에 이어서 적고, 답변 제목에 “답변 완료”라고 적어 놓겠습니다.
-----2013년 9월 11일 알림-----
답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검토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2013년 9월 12일-----
두 단어로 이루어진 영어권 인지명 중 '새너제이'와 같이 연음 표기한 사례는 없는 것 같습니다.

San Jose의 발음등록일2013.09.03.
작성자박정훈조회수40
미국 캘리포니아주 San Jose의 발음이 San Jose[sӕnəzéi]라고 하시는데, 이전 글의 답변을 보면 롱맨영어사전을 따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확인해 본 온라인 롱맨 영어사전에는 미국 San Jose는 표제어에 없지만, 대신 코스타리카의 San José가 표제어에 올라와 있고 발음은 /ˌsæn hoʊˈzeɪ/로 되어 있습니다.

1. 국립국어원에서 사용하는 롱맨영어사전이 정확히 어떤 것이고 언제 편찬된 것인지요? 정확한 제목과 판본, 출간 연도, ISBN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2. 롱맨영어사전 외 국립국어원에서 영어 지명의 현지 발음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른 사전이나 자료가 있다면 모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제목: 외래어 표기 [알림][답변 완료]
작성자온라인가나다답변일자2013.09.04.
안녕하십니까?
외래어 표기법 담당 부서[어문연구팀(02-2669-9715)]에 문의하신 바를 전달하였습니다. 담당 부서에서 답변이 오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2차 답변은 아래에 이어서 적고, 답변 제목에 “답변 완료”라고 적어 놓겠습니다.

-----2013년 9월 11일 알림-----
답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검토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2013년 9월 12일-----
1. '새너제이' 표기와 관련하여 참고한 롱맨 영어사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캐닝 이미지 첨부)
Longman pronunciation dictionary 2판(2000) 6쇄(2004)
ISBN: 0 582 36467 1
2. 롱맨 발음 사전 외에 참고하는 사전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 웹스터 인명사전 Merriam Webster's biographical dictionary 초판(1995)
ISBN: 0-87779-743-9
- 케임브리지 발음 사전 Cambridge Engligh Pronouncing Dictionary 16판(2003)
ISBN: 0 521 01713 0
- 웹스터 사전 www.m-w.com

외래어 표기 규정등록일2013.09.04.
작성자박정훈조회수71
지난 글의 답변 중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다시 질문합니다.

"전자와 같이 원어의 발음에서 이어 읽는 것은 그 발음을 기준으로 하여 이어서 적고, 후자와 같이 원어의 발음에서 끊어 읽는 것은 그에 따라 구별하여 적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저는 이런 규정을 외래어 표기 규정집에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되는 규정만 발견했습니다.

제4장 인명, 지명 표기의 원칙
제1항 외국의 인명, 지명의 표기는 제1장, 제2장, 제3장의 규정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3장 표기 세칙
제1절 영어 표기
제10항 복합어
1. 따로 설 수 있는 말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어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말이 단독으로 쓰일 때의 표기대로 적는다.
2. 원어에서 띄어 쓴 말은 띄어 쓴 대로 한글 표기를 하되, 붙여 쓸 수도 있다.

위 규정에 따르면 원어에서 띄어 쓴 지명은 "발음을 기준으로 이어서" 적는게 아니라 단독으로 쓰일 때의 표기대로 적고,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붙여서 쓸 수도 있습니다. San Jose를 "발음을 기준으로" 이어서 적어 새너제이로 적는 것은 명백하게 위 규정에 위배되는 표기로 보입니다.

"원어의 발음에서 이어 읽는 것은 그 발음을 기준으로 하여 이어서 적는" 규칙이 어디에 명시되어 있는지, 그런 규칙이 언제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는지, 또 위에 명시된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 위배되는데 이에 대해 국립국어원의 입장은 무엇인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답변 제목: 외래어 표기 [알림][답변 완료]
작성자온라인가나다답변일자2013.09.06.
안녕하십니까?
지난 답변은 발음에 따라 적는다는 것, 즉 [sӕnəzéi]를 '새너제이'로 적었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다만, 앞서 질의하신 바들에 대하여 담당 부서(어문연구팀)에서 검토하고 있으므로, 검토 결과가 나오면, 종합적으로 검토하여서 다시 답변하겠습니다.(2차 답변은 아래에 이어서 적고, 답변 제목에 ''답변 완료''라고 적어 놓겠습니다.)

-----2013년 9월 11일 알림-----
답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검토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2013년 9월 12일-----
San Jose의 경우 87년 교과서 편수 자료에 실려 있는데 '새너제이'로 실려 있습니다. (이를 외심위 10차 회의에서 다시 논의했던 것입니다.)
San Jose는 사실 '산호세'로 많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산호세'는 영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가 아니라 에스파냐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입니다.
그래서 영어 표기법에 맞게 영어 발음을 고려하여, 롱맨 사전에서 미국 대표 발음으로 제시하는 '새너제이'를 표준으로 삼은 것으로 보입니다.
외래어 표기 규정등록일2013.09.13.
작성자박정훈조회수117
San Jose를 새너제이로 표기하게 된 이력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유사한 사례가 새너제이 외에는 없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은 되지 않았기에 다시 질문합니다. 

1. 예전 질문에 대해 답변하신 내용 중 "전자와 같이 원어의 발음에서 이어 읽는 것은 그 발음을 기준으로 하여 이어서 적고, 후자와 같이 원어의 발음에서 끊어 읽는 것은 그에 따라 구별하여 적습니다."라는 것이 외래어 표기 규정 어디에 있는 내용인지요? 외래어 표기 규정에 없다면 국립국어원 내규인가요? 시행세칙인가요? 아니면 근거는 없지만 그냥 관행인가요? 

2. San Jose를 한 단어인 것처럼 묶어서 발음대로(?) 표기한 '새너제이'라는 표기와, 그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신 위의 원칙(?)은 외래어 표기 규정 제3장 제1절 제10항에 위배됩니다. 이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공식적인 답변을 주시기 바랍니다. 외래어 표기 규정이 잘못된 것이면 언제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 알려주시고, '새너제이' 표기가 잘못된 것이면 역시 언제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두가지 다 옳다면 어떻게 두가지가 다 옳을 수 있는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는 외래어 표기 규정에 위배되는 표기도 표준으로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위원회인지요? http://www.korean.go.kr/09_new/guide/committee_01.jsp의 설명에 따르면, 이 위원회는 외래어 표기법을 일반인들이 적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해서 한글 표기를 제시해 줄 필요가 있"고, "「외래어 표기법」은 가능한 모든 경우에 대해 세칙을 마련해 두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표기를 심의해야 할 경우"를 위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외래어 표기법을 준수하기 위한 위원회이므로 외래어 표기 규정에 위배되는 결정은 내릴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외래어 표기 규정에 위배되는 '새너제이'를 표준으로 정한 제10차 및 제108차 위원회의 결정은 원천 무효라 생각됩니다. 이에 대해 국립국어원의 입장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제목: 외래어 표기 [알림][답변 완료]
작성자온라인가나다답변일자2013.09.16.
안녕하십니까? 
1. "전자와 같이 원어의 발음에서 이어 읽는 것은 그 발음을 기준으로 하여 이어서 적고, 후자와 같이 원어의 발음에서 끊어 읽는 것은 그에 따라 구별하여 적습니다."라는 것은, 원어의 발음을 ‘외래어 표기법’에 비추어 적는다는 기본적인 표기 기준과, 보기에 제시한 ‘외래어 표기법’ 영어 표기 세칙과 표준국어대사전 지침과 ‘Las, Los, New, San’ 등의 단위가 쓰인 표기 용례 등을 두루 검토하여 설명한 내용입니다. 
<보기> 
2. 원어에서 띄어 쓴 말은 띄어 쓴 대로 한글 표기를 하되, 붙여 쓸 수도 있다. 
Los Alamos[l?s æl?mous] 로스 앨러모스/로스앨러모스 
top class[t?pklæs] 톱 클래스/톱클래스 
(출처: ‘외래어 표기법’ 제3장 제1절) 

4. 고유 명사의 띄어쓰기 
16. 외국 지명, 인명, 고유 명사에서 ‘Las, Los, New, San’ 등 국어의 접사처럼 생산적으로 결합하는 단위가 있는 것은 원어에서 띄어 썼더라도 붙여 쓰고 아무 표시도 하지 않는다. 
예) 산마르코(San Marco)^대성당, 샌피드로 San Pedro, 뉴멕시코 New Mexico, 로스앨러모스 Los Alamos, 라스팔마스 Las Palmas, 라스카사스 Las Casas 
(출처: 국립국어원 누리집 자료실, ‘표준국어대사전 편찬 지침 1’) 

2, 3. 담당 부서(언어정보팀)에서 검토하도록 전달하였습니다. 검토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2013년 9월 26일 알림----- 
답변이 늦어져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담당 부서에 답변이 오는 대로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2013년 10월 22일----- 
2. 비록 원어인 스페인어에서는 San과 Jose가 따로 설 수 있는 말이었다고 해도, 영어에서의 San Jose라는 지명은 하나의 단어인 것으로 파악해야 할 것으로 보이고, 이에 따라, ‘San Jose’를, 발음을 기준으로 하여 ‘새너제이’로 적는 것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3. 외래어 표기법 제1장 제5항에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표기법'을 넓게 해석하면 관용 표기도 표기법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표기법'이라고 하면 자모 대조표와 표기 세칙을 이른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심위는 협의의 표기법에 따른 표준 표기뿐만 아니라, 관용 표기를 심의하는 기구이기도 하므로, 관용 표기를 정하는 것을 표기 규정에 위배되는 결정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대답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등록일2013.10.22.
작성자박정훈조회수55
오래 걸리긴 했지만 잊지 않고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참 어렵네요.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인정하기가 그렇게 어려운지요? 답변이 납득이 되지 않아 추가로 질문 드립니다. 

(제 원래 질문) 2. San Jose를 한 단어인 것처럼 묶어서 발음대로(?) 표기한 '새너제이'라는 표기와, 그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신 위의 원칙(?)은 외래어 표기 규정 제3장 제1절 제10항에 위배됩니다. 이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공식적인 답변을 주시기 바랍니다. 외래어 표기 규정이 잘못된 것이면 언제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 알려주시고, '새너제이' 표기가 잘못된 것이면 역시 언제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두가지 다 옳다면 어떻게 두가지가 다 옳을 수 있는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어원 답변) 2. 비록 원어인 스페인어에서는 San과 Jose가 따로 설 수 있는 말이었다고 해도, 영어에서의 San Jose라는 지명은 하나의 단어인 것으로 파악해야 할 것으로 보이고, 이에 따라, ‘San Jose’를, 발음을 기준으로 하여 ‘새너제이’로 적는 것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추가 질문) 영어에서의 San Jose를 한 단어인 것처럼 붙여서 Sanjose로 표기한 사례가 있다면 모를까, 영어에서도 표기 자체를 San과 Jose로 띄어서 적는 것이 명확한데, "하나의 단어로 파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은 외래어 표기 규정 제3장 제1절 제10항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자의적인 해석입니다. 규정을 여기에 다시 옮겨 볼까요? 

제10항 복합어 
1. 따로 설 수 있는 말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어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말이 단독으로 쓰일 때의 표기대로 적는다. 
2. 원어에서 띄어 쓴 말은 띄어 쓴 대로 한글 표기를 하되, 붙여 쓸 수도 있다. 

10항의 2에서는 "띄어 쓴대로 표기하되, 붙여 쓸 수도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 규정에 따르자면 관행적으로 Los, San 등은 한글로는 붙여 적지만 띄어 쓸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더우기, 10항의 1에서는 심지어 이미 원어에서도 붙여서 한단어처럼 쓰는 복합어조차,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말이 단독으로 쓰일 때의 표기대로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설령 미국에서 Sanjose라고 붙여 쓰더라도, San과 Jose로 따로 설 수 있으므로 (각각 사전에 표제어로 올라가 있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San과 Jose의 발음을 별도로 적고 붙여 적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하나의 단어로 파악해 발음을 기준으로 '새너제이'라고 적는다"는 것은 이 규정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주장입니다. 정 그 주장이 맞다고 하려면 외래어 표기 규정을 그에 맞도록 수정해야 합니다. 물론 외래어 표기 규정을 그렇게 수정한다면 Los Angeles는 로샌젤레스로, San Antonio는 새난토니오로 적어도 된다는 얘기가 됩니다. 

(제 원래 질문) 3.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는 외래어 표기 규정에 위배되는 표기도 표준으로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위원회인지요? http://www.korean.go.kr/09_new/guide/committee_01.jsp의 설명에 따르면, 이 위원회는 외래어 표기법을 일반인들이 적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해서 한글 표기를 제시해 줄 필요가 있"고, "「외래어 표기법」은 가능한 모든 경우에 대해 세칙을 마련해 두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표기를 심의해야 할 경우"를 위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외래어 표기법을 준수하기 위한 위원회이므로 외래어 표기 규정에 위배되는 결정은 내릴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외래어 표기 규정에 위배되는 '새너제이'를 표준으로 정한 제10차 및 제108차 위원회의 결정은 원천 무효라 생각됩니다. 이에 대해 국립국어원의 입장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국어원 답변) 3. 외래어 표기법 제1장 제5항에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표기법'을 넓게 해석하면 관용 표기도 표기법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표기법'이라고 하면 자모 대조표와 표기 세칙을 이른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심위는 협의의 표기법에 따른 표준 표기뿐만 아니라, 관용 표기를 심의하는 기구이기도 하므로, 관용 표기를 정하는 것을 표기 규정에 위배되는 결정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추가 질문) 1996년 당시 San Jose의 관용 표기는 '산호세'였습니다.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언론을 제외하고 일반인들이 실생활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현지 교민이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표기는 여전히 '산호세'입니다. 이렇게 이미 굳어진 외래어를 무리해서까지 다른 표기로 바꿨다면 그에 대한 외래어 표기 규정 근거가 명확해야 할 것입니다. 근거도 원칙도 없이 '소리나는 대로' 적고, 관용 표기를 무시하면서 외심위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정하는 게 표준이라면 외래어 표기법은 왜 있습니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건 핵심이 아니므로 이쯤 하겠습니다. 

원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제 질문에 대해 국립국어원은 여전히 외래어 표기 규정 제3장 제1절 제10항에 위배되는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명백히 미국에서 띄어서 쓰고 있는 지명을 "사실상 한 단어"라고 우기는 - 그래도 역시 규정에 위배되긴 마찬가지지만 - 자의적인 판단에 의거한 답변 말고, 해당 규정이 생긴 배경과, 유사한 다른 사례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통한, "국립"국어원의 이름에 걸맞는 답변을 기대하겠습니다. 
답변 제목: 외래어 표기 [알림][답변 종결]
작성자온라인가나다답변일자2013.10.24.
안녕하십니까? 
문의하신 바를 담당 부서에서 검토하도록 전달하였습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2013년 11월 12일----- 
검토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답변이 늦어지고 있는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2013년 11월 25일----- 
답변이 늦어져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내부적으로 여러 번 논의를 거쳤습니다만, ‘새너제이’에 대한 답변은 지금까지 드렸던 답변 내용 이상으로 더 드릴 답변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점 이해해 주시기 바라고, 이것으로 '새너제이' 표기에 대한 답변을 종결하겠습니다.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San Jose가 '새너제이'로 - 국립국어원 외래어 심의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앞선 글들을 못읽은 분들을 위해 먼저 간단하게 요약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실리콘 밸리의 중심 도시인 San Jose는 스페인어 지명으로, 스페인어식으로는 '산호세'로 읽지만, 영어식으로는 '샌호제(sænhoʊzeɪ)'로 읽습니다. 우리말로 표기한다면 '샌호제' 혹은 '샌호제이' 정도로 하면 적당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산호세'라고 읽고 쓰고 있으며, '산호세'라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 표준은 San Jose를 '새너제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새너제이'는 현지 발음과도 맞지 않을 뿐더러, 엄연히 San과 Jose가 따로 떨어진 두 단어인데, 이를 연음해 표기함으로써 도대체 무슨 지명인지 '새너제이' 표기만 보고는 알 수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국립국어원은 1996년 이후 17년간 교민들의 수정 건의를 묵살해 오다가, 지난 4월말에야 건의를 수용해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에서 수정안을 논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회의에서, '새너제이'를 계속 쓰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아래는 지난 4월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 회의록 중, San Jose 관련 발제 내용과 토론 내용을 정보공개 청구하여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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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제108차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 심의안
(2013. 4. 24.)
[ 지 명 ] - 재심의
· 새너제이→샌호제이 San Jose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도시. -회의 10차
· 새너제이→샌호제이 샤크스 San Jose Sharks NHL(미국 프로 아이스하키 연맹)팀. -회의 44차
* 영어 발음: 롱맨영어발음사전
영국 대표 발음 /sænhoʊzeɪ/ ‘샌호제이’
가능 발음 /sænoʊzeɪ/ ‘새노제이’; /sænəzeɪ/ ‘새너제이’
미국 대표 발음 /sænəzeɪ/ ‘새너제이’
가능 발음 /sæn(h)oʊzeɪ/ ‘샌호제이’, ‘새노제이’ /sænəseɪ/ ‘새너세이’
웹스터지명사전 /sænhoʊzeɪ/ ‘샌호제이’
웹스터온라인사전 /sæn(h)oʊzeɪ/ ‘샌호제이’, ‘새노제이’ (http://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san%20jose)
* 영어 표기법을 적용하였습니다.
* 미국 지명 용례에서, 영어 발음상 j가 /h/로 발음되거나 발음되지 않는 에스파냐어 기원의
‘San J˗’ 철자의 지명이 이 외에 2건 더 있습니다. 사전에서 일관되게 j가 발음되지 않는다
고 밝히는 ‘San Joaquin 강’은 ‘샌와킨 강’으로 표기하며(표준국어대사전), 사전에서 일관되
게 j가 /h/로 발음되거나 발음되지 않는 두 가지 발음이 가능하다고 밝히는 ‘San Juan’은
‘샌환’으로 표기합니다. 현 안건 또한 사전에서 j와 관련하여 두 가지 발음이 가능하다고 밝
히므로 j(/h/)를 ‘ㅎ’으로 적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입니다.
* 외래어 표기 심의 지침의 표기 심의 기준에 따르면, 영어에서 동일 우선순위의 사전들에
서 복수 개의 발음 정보가 발견되면 규칙에 의해 타 발음들을 설명할 수 있는 발음에 표기
법을 적용합니다. /ə/는 /oʊ/의 약화로, 발음되는 않는 j는 /h/의 탈락으로 설명할 수 있으므
로, 이에 따르면 표기법을 적용할 기준 발음은 /sænhoʊzeɪ/ ‘샌호제이’가 됩니다.
* 회의 107차에 영어권 인명에서 원어에서는 단순모음인 외래 인명의 개음절 이중모음 /eɪ/ 을 ‘에’와 ‘에이’ 중 무엇으로 표기할지가 쟁점이 되었는데, 이를 ‘에이’로 표기하기로 결정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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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차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 회의록
(2013. 4. 24.)
[ 지 명 ] - 재심의
· 새너제이→샌호제이 San Jose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도시. -회의 10차
· 새너제이→샌호제이 샤크스 San Jose Sharks NHL(미국 프로 아이스하키 연맹)팀. -회의 44차
※ 수정하지 않기로 결정
위원 1: ‘새너제이’ 결정 당시 사내의 관련 부서의 반발이 컸던 안건이다.
위원 2, 위원 3: 초기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미 ‘새너제이’로 정착되어 가는 단계인데, 이를 다른 표기로 수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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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 결정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1. 부실한 국립국어원의 발제
우선 롱맨영어사전이 어떤 권위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미국 대표발음이 '새너제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몰라도, 제가 살고 있는 San Jose에서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라디오에서 수십명의 아나운서와 기자들이 생생하게 '샌호제' 혹은 '샌호제이'라고 발음하는 것을 듣고 삽니다. 'ㅎ' 발음을 생략하거나 묵음 처리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당장 구글에서 "San Jose pronunciation"이라고 검색만 해 보아도, 검색 상위 10여개 모두 '샌호제' 혹은 '샌호제이'에 가깝게 발음한다는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국립국어원의 연구 조사가 매우 부실하고, 현지 발음을 직접 들어보려 하거나 광범위한 인터넷 검색을 하기보다는 몇개의 사전에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큰 문제는 '새너제이'라는 표기가 가진 문제점을 전혀 적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국립국어원 발제 내용을 자세히 보면 /h/를 발음하거나 약화되어 묵음이 되는 두가지 경우가 있을 때 'ㅎ'으로 적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고 제안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마치 '새너제이'도 가능한 표기, 심지어는 미국 대표발음인 것처럼 적어 '고치든 안 고치든 별 상관없는' 것처럼 발제를 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이어지는 토론에서 "두가지 다 괜찮아 보이는데 뭘 굳이 또 고치냐. 그냥 놔두자."는 식으로 결정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새너제이' 표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연음해서는 안되는 독립된 두 단어를 연음해서 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립국어원 발제에서 예로 든 '샌와킨 강'과 같이, 백번 양보해 /h/가 항상 묵음이 되어 'ㅎ'를 빼고자 한다면 '샌어제이' 혹은 '샌오제이'로 적어야 합니다. 이점 국립국어원에 건의한 질의서 및 이메일을 통해 충분히 강조했음에도, 국립국어원이 이점을 발제에 적시하지 않은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부실한 위원회의 토의
비록 국립국어원의 발제가 부실하였다 해도, 명실공히 국가의 표준어 표기법을 결정하는 권위를 가진 위원회의 토론이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져보려는 노력도 없고, 실제 발음이 어떠한지에 대한 본인들의 견해나 지식도 없고, 어떤 표기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토의도 없이, '다른 표기로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 하나로 수정안이 부결되어 버렸습니다. 회의록에서 위원1이 실토했듯이, '새너제이' 결정 당시 사내 반발이 컸다는 것은 그만큼 이 표기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잘못된 표기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착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것이 표준으로 정해져 있어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는 것이지, 결코 그 표기가 제대로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 것입니다. 잘못된 표기를 표준으로 정해놓고 억지로 그걸 따르라고 하고, 제대로 된 표기로 고치자는 제안을 이런 식으로 묵살한다면, 도대체 이 위원회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저는 올 여름이면 San Jose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San Jose의 바른 표기를 위한 노력은 계속할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혹시 기자분들이나, 아는 기자분이 계시면, San Jose의 바른 표기법 정착을 위한 노력에 동참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p.s. 대표 발음이 /sænhoʊzeɪ/에 가깝고 이를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최대한 맞게 적으면, 국립국어원 발제대로 '샌호제이'가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eɪ/를 '에이'로 적는 것에 반대합니다. '라스베이거스'는 '라스베거스'로, '샌디에이고'는 '샌디에고'로 적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샌호제이'가 아니라 '샌호제'로 적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별로 생각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현행 표준인 다른 지명과의 일관성을 생각한다면 일단 '샌호제이'로 통일하는 것이 향후 논의를 위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2013년 5월 16일 목요일

Cross-platform 시대 - "모바일 OS전쟁은 끝났다" (Google I/O 2013 키노트 감상)

어제 Google I/O의 키노트 발표를 보신 분들은 다들 무언가 예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2일간에 걸쳐서 하던 키노트 발표를 하루에 몰아서 하는 식으로 바꾼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2010년부터 전통처럼 내려오던 새로운 Android platform 발표가 없었던 것이다. 대신 Android 관련 발표의 핵심은 'Google Play Services'였다. 즉 Google의 주요 관심이 더이상 '새 버전의 Android'가 아니고, 'Android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여러가지 관점에서 어제 키노트를 바라볼 수 있겠지만, 내게 있어 어제 키노트는 최근 Google이 지향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행사라고 보인다. 그리고 한 단어로 어제 키노트를 요약하자면, 'cross-platform'이다.

Google 서비스의 Cross-platform 지원


Google은 모바일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인터넷 보급율이나 Google Search 점유율이 떨어지는 국가에 Google Search를 보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전략적으로 Android에 투자를 하고 키워 왔다. 특히 turn-by-turn navigation, Google Now 등 몇가지 새로운 서비스를 Android에서만 독점적으로 제공함으로써, Android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집중해 왔다.

그러나 Android에 특혜를 주는 전략은 이미 바뀌고 있다. Google Maps와 turn-by-turn navigation은 Android뿐 아니라 iOS에서도 지원된다. Google Now 역시 iOS를 지원한다. 이러한 변화는 어제 새롭게 발표된 것이 아니며, 사실상 이미 시작된 것이다. 어제 키노트에서 발표한 Google Play game services, Hangouts, New Google Maps 등 모두 iOS를 동시에 지원한다고 선언했다. 또 Android와 iOS가 다가 아니다. 음성검색, 대화검색이 이제 웹에서도 가능하다. 결국 Google의 모든 서비스는 "플랫폼이나 OS에 상관없이 모든 기기에서 동일한 UX를 제공하며 완벽하게 동작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제 Android는 Google의 다양한 서비스들을 퍼트리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사용 가능한 platform 중의 하나라는 뜻이며, 더이상 Android를 특별대우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사실상 Google 외에도 성공적인 서비스들은 대부분 이미 cross-platform을 지원하고 있다. iOS나 Android에서만 돌아가는, 그러면서도 성공적인 앱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앱들이 서버를 기반으로 대부분의 정보를 클라우드에 두고, 앱에서는 서버와의 연동을 통해 각 OS에 맞는 UX를 제공하는 식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부분의 서비스, 앱 개발자들에게 cross-platform이 중요한 화두이며, 관련 개발 툴을 제공하는 회사들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툴이 제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여러 platform을 지원하려면 노력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회사마다 어느 한 OS에 중점을 두고 다른 OS는 부수적으로 지원하거나 기능에 제약이 있는 경우 등 천차만별인 상황이다.

Google 서비스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제 발표는 Google 서비스들도 향후 cross-platform에 보다 신경을 쓰겠다는 것이다. Play Store의 주요 발표 중 하나는 이제 Android 앱의 UX와 웹의 UX가 동일해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Maps의 주요 방향 중 하나도 앱과 웹에서 동일한 UX를 제공하는 것이다. Hangouts은 처음부터 cross-platform을 기치로 내걸었다.

모바일 OS전쟁의 궁극적 승자


제목에 "모바일 OS전쟁은 끝났다"고 썼지만, 물론 모바일 OS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더 치열하게 진행될 것이고, 현재 시장을 지배하는 Android와 iOS간의 경쟁 외에 3위 OS 위치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도 관심거리이다. 그러나, 이미 Android로 이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Google 입장에서는, 이번 키노트를 통해 이미 모바일 OS 전쟁의 종식을 선포한 것과 다름이 없다. 즉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질 리도 없고, 사실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는 것이 Google의 자신감이다.

향후 Tizen이나 Firefox OS 등이 성공하더라도, Google로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두 OS 모두 HTML5를 기반으로한 web OS를 추구하고 있고, 이미 HTML5를 기반으로 웹상에서 완벽하게 동작하는 Google 서비스들은 다른 OS에서도 문제없이 동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각 OS의 자체 브라우저가 제대로 동작하지 못한다면, Google은 언제든 이러한 OS에 Chrome 브라우저를 얹을 수 있다.

Google이 아직은 콘텐츠 판매로는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지만, 장기적으로는 Google이 콘텐츠 시장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Apple의 ecosystem은 Apple 기기들끼리만 서로 호환 가능한 콘텐츠, 서비스로 구성된다. Google은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 콘텐츠를 살 때 Apple의 닫힌 ecosystem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콘텐츠를 살 것인가, 모든 기기에서 쓸 수 있는 콘텐츠를 살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Google이 장기적으로는 힘을 발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Google이 Android를 포기한다는 것일까? 그렇게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스마트폰이 보급되지 않은 국가도 많고, Google 서비스들을 공급하기에 Android는 여전히 가장 매력적인 도구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어떤 기기에서도 Google 서비스들이 완벽하게 지원됨으로서, 이러한 서비스들을 맛본 사용자들은 다음번 스마트폰을 고를 때 Android를 고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가령 아이폰만 계속 써오던 사용자들이 Google Maps의 turn-by-turn navigation과 Google Now의 음성검색에 맛을 들이게 되면, 다음번 스마트폰 구입시에는 이러한 기능들이 좀더 편하게 결합되어 있는 Android 폰에 자연스레 관심이 가게 될 거라는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향후 몇년간은 Android는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며, 새로운 기능들을 개발자들과 유저에게 제공하려 노력할 것이다. 특히 개발자들을 위한 API와 개발툴 개선에는 더욱 더 힘을 쏟을 것이다. 개발자들에게 있어 Android의 개발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수많은 크기와 resolution의 스크린들을 지원하고 검증해야 하는 문제를, 이번에 발표한 개발툴인 Android Studio를 통해 크게 개선한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Chrome, 특히 Android 용 Chrome의 중요성을 높여가며, 모든 Google 서비스들이 Android 뿐 아니라 웹에서도 잘 돌아가도록 개발할 것임도 확실해 보인다. 결국 궁극적으로 Google이 원하는 것은 'Android로의 천하통일'이 아니라, 'Google 서비스로의 천하통일'이기 때문이다.

2013년 5월 7일 화요일

그들만의 '새너제이'

지난 포스팅 San Jose가 새너제이가 아닌 이유에서 San Jose가 '새너제이'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충분히 밝혔고, 국립국어원 담당자에게도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는데, 아쉽게도 지난 4/24 정부언론 공동 심의위원회에서 관련 안건이 부결되었다고 한다. 아래는 국립국어원에서 받은 메일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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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4일 개최된 제108차 회의에서 San Jose의 표기를 논의하였습니다만, 부결되었습니다. 언론 쪽에서 바꾸기 어렵다는 의견들이 나왔는데, 이 표기가 결정될 당시 사내 반발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6여 년 동안 사용되면서 겨우 정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바꾸는 것이 더 부담스럽다는 의견들이 나와서 현 표기('새너제이' - 필자 주)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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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겨우 정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가 없다. 정착되는 양상은 언론사 내부 사정이지, 일반 국민들은 여전히 '새너제이'가 어디 붙어 있는 도시인지도 모른다. 뒤늦게 San Jose라고 알려주면 열이면 열 모두 "그게 왜 새너제이야?"라고 되묻는다. 이건 트위터에서 '새너제이'라고 검색만 한번 해보면 당장 알 수 있는 문제다. 신문기사를 리트윗한 것 이외에, 자신의 일상에서 San Jose를 '새너제이'라고 표기한 일반인은 찾아볼 수 없다. '새너제이' 관련 트윗은 대부분 "San Jose가 새너제이라니 말도 안된다"는 취지의 트윗들이다.

설사 '새너제이'로 정착되었다 하더라도, 잘못된 표기를 왜 정착되도록 놔두어야 하는가? 그럴 거면 애초에 왜 '산호세'에서 '새너제이'로 바꾸었나? 큰 혼란이 예상됨에도 잘 정착되어 있던 표기를 바꾸기로 했던 것은 새 표기가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그렇다면 '새너제이'가 옳지 않다는 것이 명확해진 지금, 더 나은 표기로 바꾸자는데 왜 혼란을 걱정하는가?

짐작컨대 16년전 '새너제이'라고 쓰자고 주장했던 이들이 여전히 그 위원회에 남아 있고, 자신들의 16년전 잘못을 인정하기가 싫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쓰고 있는 '산호세'라는 표기에 맞서 '새너제이'를 고집스럽게 주장해 왔는데, 이제 와서 '새너제이'가 잘못되었다면 그들의 체면은 뭐가 되겠는가. 그동안 '산호세' 혹은 '샌호세'가 맞다고 수습기자들이 말하면 "무슨 소리야. 새너제이가 맞지.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고 해 왔으니, 나이 어린 기자들이 "그것 보세요. 제가 뭐라 그랬습니까?" 이런 식으로 비웃을 것이 두려웠지 않을까.

이런 사소한 문제 하나조차 합리적인 사유에 의해서 결정되지 못하고, 위원이랍시고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나라의 각 부처에서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날까. 아무런 이권이 걸려 있지 않은 외국의 지명 하나 정하는 것도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이런저런 사정과 불편함을 이유로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두자는 식으로 결정된다면, 각종 이권이 걸려 있는 민감한 사안은 오죽하랴.

아마도 '새너제이' 표기는 결국 언젠가는 수정될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가령 10년 혹은 20년 후 지금 위원회에 있는 이들이 모두 은퇴한 후, '새너제이'라고 결정했던 이유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시점을 가정해 보자. 누군가 또 이 표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안건을 올리면, 그때 새로 모인 위원들은 아주 간단하고 당연하게 "이게 왜 이렇게 이상한 표기로 되어 있지? 고칩시다."라고 일분만에 변경안을 통과시킬지도 모른다.

문제는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 믿고 이걸 그대로 놔둘 것이냐, 아니면 그걸 앞당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계속 들이며 또 다른 사람들을 계속해서 귀찮게 할 것이냐이다. 어차피 앞당긴다고 해도, 지난달 부결되었으니 올해 안에 다시 재심의하기는 힘들 것이고 최소한 1,2년은 봐야 할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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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께 의견을 묻고자 합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댓글로 San Jose 표기로 무엇이 좋을지 의견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산호세', '새너제이', '샌호세', '샌호제', '샌호제이' 등이 지금까지 거론되는 표기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표기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요? 댓글이 많이 달리면 이 문제에 대해 다른 분들도 관심이 많으시다고 보고 계속 추진해 보고, 댓글이 없으면 다들 별 관심 없으신 것으로 알고 세월의 흐름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현지 발음을 들어보고 싶으신 분은 여기 혹은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5/8 추가)
예상보다 훨씬 많은 댓글과 반응에 감사드립니다. Google+와 댓글이 통합되어서, Google+로 공유하신 경우 여기서 그 공유글에 달린 댓글까지 다 볼 수 있으니 좋네요. 덕분에 여러가지로 많이 배웠습니다.

성원에 힘입어 포기하지 않고 힘닿는데까지 계속 찔러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까지 명확하게 어떤 표기가 좋다고 의견 주신 분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산호세' - 6분
'샌호세' - 3분
'샌호제' - 1분
'산호세' 혹은 '샌호세' - 2분
'산호세' 혹은 '샌호제' - 1분
'샌호제' 혹은 '샌호제이' - 1분

전체적으로 기존 표기인 '산호세'를 선호하시는 분이 가장 많고, 만약 미국 발음에 맞게 고친다면 '샌호세'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보이네요.

귀한 의견 감사드리며, Woohyong Choi님께서 제안해 주신 대로 정보공개 신청 등을 계속 진행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5/28 추가)
정보공개 신청하였으나, 아래와 같이 거부되었습니다. 자기들도 부끄러운 줄은 아나 봅니다.



접수일자
2013.05.14
접수번호
2056557
처리기관
국립국어원
통지일자
2013.05.24
청구정보내용
2013년 4월 24일 정부 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 제108차 회의록 중 미국 캘리포니아 San Jose 표기 건 상세 회의록
- 국립국어원 발제 내용
- 반대토론 상세 내용 (발언자, 발언 내용 포함)
- 표결 결과 
공개내용
비공개내용사유
1. 내용 : 행정정보공개 이의신청 심의 의결서
2. 근거 :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5호
3. 사유 : 상기 문서는 위원회 등 각종 회의 관련 자료로서 위원의 성명이 공개될 경우, 외래어 심의회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공개할 수 없음을 알려드리오니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3년 4월 12일 금요일

애플과 구글의 기업 문화

적게 잡아 7가지의 인더스트리를 바꿔놓았다는 스티브 잡스. 그가 만들고 이끈, 수많은 팬보이를 거느리고 있으며, 지금은 시가총액 1위에서 밀려났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의 가치를 갖는 회사가 된 애플. 검색에 있어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손안에 넣고 있는, 그리고 꿈의 직장으로 잘 알려진 구글. 실리콘밸리에 와 있음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 중 하나는, 이러한 최고의 회사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고, 실제로 그곳에 근무하는 이들을 만나서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기업이 되어 있는 애플과 구글, 두 회사 모두 최첨단의 기술을 가진 기업, 상상할 수 없이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기업이지만, 기업 문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상 이 두 회사만큼 서로 다른 회사도 없을 것이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애플과 구글의 기업 문화에 대해 잘 정리해 놓으셨고 내가 두 회사의 구석구석까지 모든 부분을 커버할 수도 없겠으나, 그래도 내 입장에서 눈에 띄이는 몇개의 키워드로 두 회사의 기업 문화를 한번 정리해 보았다.

업무상 구글과 같이 일하는 입장이라 구글에 대해서는 직간접적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보고 들었고, "In the Plex"라는 책에서 얻은 정보도 있다. 애플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이 몇분 계시지만 주로 임정욱(@estima7)님께서 번역한 "인사이드 애플"과 스티브잡스 전기를 통해 얻은 정보들이다. 책에서 인용한 부분이 워낙 많아 주석을 달지 못했으니 양해 부탁드린다.

1. 정보 공유 - 비밀주의 vs 참견 문화

애플의 비밀주의는 잘 알려져 있다. 새로운 제품에 대한 보안은 물론, 회사의 조직도라든가 어떤 식으로 회사가 운영되는지 애플 내부의 모든 것이 비밀에 붙여져 있다. 애플의 직원들, 특히 고위 임원들은 대외 활동을 극도로 꺼리고, 따라서 실리콘밸리에 있으면서도 애플은 독자 제국을 구축할 뿐 주변의 다른 회사들과 교류하지 않는다. 가령 서로 이사회를 통해 활발히 교류하는 다른 기업 임원들과 달리, 애플의 임원들 중 다른 회사의 사외 이사로 참여한 이는 팀 쿡이 유일했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대외 비밀주의가 아니라, 회사 내부 직원들을 상대로 하는 비밀주의이다.

애플의 문화는 "궁극적으로 꼭 알아야 할 것만 공유하는 문화"이다. 애플 본사에는 특정 프로젝트에 관여된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는 구역이 있으며 다른 직원들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고 알려고 들어서도 안된다. 각 사람이 맡고 있는 일은 퍼즐 조각처럼 분리되고, 완성된 퍼즐의 모습은 최고 경영층만 알고 있다. 마치 점조직과 같이, 직원들은 다른 직원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고, 알려고 들지도 않는다. 이러한 문화의 바탕에 깔린 의미는 "자기 할 일에만 신경쓰라"는 것이다.

애플이 믿는 것은 각 자리에 최고의 인재들이 최선을 다해서 자기 업무를 하면 최선의 결과를 낸다는 것이다. 자기 일이 아닌 다른 일로 주의를 뺏기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이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애플에서는 모든 업무에 대해 누가 책임자인가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DRI (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 - 직접책임자)는 어떤 과제와 관련된 문제에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어 제품 발표를 할 경우, 이를 준비하는 문서의 가장 작은 아이템에까지 DRI가 명시되어 있다.

모든 일에 대해 누가 책임자인지가 명확하고, 반대로 모든 직원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고 그 일만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애플 직원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미덕이다. 물론 누구나 인간인 이상 실수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애플에서는 적당주의는 절대 통용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최고의 인재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 그리고 그것들이 잘 조화될 경우 그 결과는 대부분 완벽에 가깝다. 그 덕분에 애플 제품은 모든 부분에서 디테일까지 완벽한 상태로 고객에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구글의 문화는 정확히 이와 반대다. 구글의 문화는 "주인의식"이란 것으로 많은 부분 설명할 수 있는데, 이는 모든 직원이 주인이고, 모든 직원이 회사의 모든 것에 대해 알 권리가 있고, 또 신경쓰고 참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글 직원은 인수 합병에 관한 정보 등 법적으로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몇몇 민감한 정보를 제외하고는 사내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구글의 TGIF는 구글이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것인데, 매주 금요일 (지금은 매주 목요일로 바뀜) 두 창업자와 에릭 슈미트 등 최고경영자들이 전 직원 앞에서 회사의 경영성과와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직원들의 질문에 직접 답변하는 시간을 갖는다.

최고의 인터넷 기업답게 구글의 모든 내부 정보는 클라우드에 존재하고, 직원들은 누구나 검색을 통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물론 정보 접근 권한을 일부에게만 부여할 수 있고 그런 비밀 프로젝트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누가 담당자인지, 최근에 어떤 미팅들에서 어떤 의사결정이 내려졌는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다른 프로젝트의 소스 코드도 직접 볼 수 있고, 만약 명백한 버그가 발견된다면 직접 고칠 수도 있다. (물론 고친 코드를 리뷰하고 반영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해당 프로젝트팀이다.)

구글에서는 이러한 참견이 당연하고 또 장려된다. 누구나 회사의 주인이므로 회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참견하고 의견을 낼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에 깔린 믿음은, 주인 의식으로부터 비롯된 집단 지성의 힘이다. 담당자 한두명이 아무리 똑똑해도, 그들이 알지 못하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을 모르고 지나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다행히 구글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수만명의 최고의 인재들을 갖고 있다. 이들의 집단 지성을 이용한다면, 많은 실수를 피하고, 혹은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구글이 내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모든 디테일에 있어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투박하고, 헛점 투성이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구글의 무서운 점은, 첫 제품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좋아져 간다는 것이다. 이는 구글이 기본적으로 피드백을 듣기를 좋아하고, 열린 마음으로 참견을 받아들이며, 잘못된 것은 수정할 수 있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제품이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될수록, 소비자들로부터 오는 피드백도 늘어나겠지만, 그 이상으로 내부 직원들로부터의 피드백 수가 엄청나게 증가한다. 이 모든 피드백들이 다 유용하지는 않겠지만, 생각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많은 이들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분명하다.

2. 의사 결정 - 인사이트 vs 데이타

스티브 잡스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객들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는 고객들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객이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필요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채워주는 것이 위대한 제품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애플의 제품은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몇몇 천재들의 인사이트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애플도 몇만명의 직원들이 있고, 이들도 아이디어를 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팀 쿡은 한 인터뷰에서 매우 자랑스럽게 "애플은 수많은 좋은 아이디에어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회사"라고 이야기했다. 오늘날의 애플이 있게 한 것은 수많은 좋은 아이디어나 그저 그런 좋은 제품들이 아니라, 소수의 "완벽에 가까운 훌륭한" 제품들 덕분이다.

그런데 최고의 제품에 집중하기 위해 수많은 좋은 아이디어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어떤 아이디어가 최고이고 어떤 아이디어가 그저 좋은 아이디어인지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애플의 의사 결정은 무엇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는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최후 의사결정자는 스티브 잡스였다. 단지 큰 방향에서 어떤 제품이 최고의 아이디어인지, 회사가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결정하는 의사결정 뿐 아니라, 포장 디자인, 로고의 색깔, 애플 스토어에 사용되는 가구의 재질까지 모든 것을 최종 결정하는 사람은 스티브 잡스였다.

이러한 스티브 잡스의 의사 결정은 대부분 자신의 인사이트에 의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객관적인 데이타가 어떻든, 잡스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밀어 붙였다. 당연히 잡스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우에 있어 잡스가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어찌 보면 잡스의 의사결정이 옳았다기보다, 그는 자신의 결정을 옳은 것으로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애플의 직원들은 항상 스티브 잡스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의사 결정의 기준은 "잡스라면 어떻게 생각할까?"이다. 사소한 디테일까지 직접 챙기는 잡스의 스타일 덕에, 담당자들의 역할은 최선을 다해 잡스의 구미에 맞도록 준비하되, 언제나 잡스의 지시에 의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음을 알고 그 요구에 최대한 빨리 대응하는 것이었다. 애플의 일반 직원들은 잡스를 실제로 만날 기회가 거의 없음에도, 항상 잡스를 의식하며 일했고 잡스가 무엇을 원하는지, 잡스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항상 인식하고 있었다.

잡스가 없는 지금의 애플은 이전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잡스가 심어놓은 DNA가 존재하며, 아직도 "잡스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팀 쿡이나 조너선 아이브 등 애플을 이끄는 이들 역시 잡스와 마찬가지로 모든 디테일을 챙기는 스타일이므로 - 그렇지 않았다면 애플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테니 - 기본적인 의사결정 과정이나 스타일에는 변화가 없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구글의 의사 결정은 대부분 데이타에 기반해 내려진다. 물론 때로는 중국에서의 철수와 같이 창업자의 소신에 따른 의사 결정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합리적인 토론과 데이타를 근거로 한 의사 결정이 내려진다. 가령 서치에 어떤 새로운 기능을 적용할지 여부를 결정할 때,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나 세르게이 브린이 볼 때 유용하다고 판단해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적으로 1%의 유저에게만 새로운 기능을 적용해 보고, 그 결과로 나온 데이터를 보고 적용할지를 결정한다.

따라서 구글의 의사 결정은 예측 가능하고 - 적어도 그 데이타를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 또 의사 결정권자의 개인적 취향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따라서 구글은 상당히 중요한 의사결정의 권한이 담당 실무자에게까지 위임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권한이 위임되어 있다고 하나, 그것이 담당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나 어떤 식으로 회사가 의사 결정하는지를 알고 있고, 또 누가 의사 결정하든 그 과정과 결과가 시스템 상에 고스란히 남아 누구나 볼 수 있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모든 디테일이 최고경영층에까지 보고되어 의사결정을 받아야 진행되는, 번거로운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몇몇 중요한 사안들, 예를 들어 사람을 채용하는 문제같은 경우 창업자의 소신에 의해, 반드시 CEO의 결재까지 얻게 되어 있기도 하다. 이는 아마도 채용과정의 특성상 모든 인터뷰 결과 등을 모든 직원에게 오픈할 수는 없고 또 피드백을 받을 수도 없기에, 내부의 참견 문화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특수성을 고려한 조치일 것이다.

3. 동기 부여 - 경쟁과 자존심 vs 투명성과 칭찬

애플과 구글의 직원들은 모두 매우 열심히 일한다. 모두 근무 시간에는 정신없이 바쁘고, 퇴근 시간 이후나 주말에 일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동기는 좀 다르다.

애플의 경우 사내에서 비판과 때로 비난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실랄한 비판을 즐겼던 스티브 잡스의 스타일이 기업 문화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당연하다. 애플의 한 전 임원은 애플을 "매일같이 공을 세우기 위해 서로 싸우는 조직"이라고까지 했다. 누구나 항상 최선을 다해서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으며, 그렇지 못한 경우 엄청난 비난을 받거나 도태될 수 있다는 긴장감 속에서 일한다. 때로는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데, 최고의 제품을 위해서라면 무슨 행동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사에서는 거의 일만 하며, 집중력을 흐뜨러트릴 수 있는 다른 행동은 하지 않는다. 퇴근 후나 주말에도 이메일을 확인하고 컨퍼런스 콜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다행히 애플에서는 사내 정치가 특히 일반 직원들 사이에는 거의 없는데, 정치를 할 만큼 정보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분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직원, 열심히 자기 일만 하기를 원하는 직원들에게는 다른 일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집중할 수 있는, 그리고 늘 긴장함으로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최고로 끌어내어 줄 수 있는 최고의 업무 환경이 된다.

"애플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애플로 들어가고 싶어하고, 애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애플을 나가고 싶어한다"는 말이 있을만큼, 애플 직원들도 애플이 "편하고 즐거운 직장"이 결코 아니라고 인정한다. 애플은 직원들에게 매우 가혹한 곳이고, 단지 업무 시간이 아닌 전인격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그러나 애플 직원들에게는 최고의 회사에서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다. 애플에서 하는 일을 사랑하고, 회사의 사명과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다. "바에 앉아 있으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90%가 내 회사의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자부심이 애플 직원들에게는 있다.

구글 직원들도 매우 열심히 일한다. 물론 애플에 비하면 개인차가 좀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많은 직원들이 때로는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한다. 구글에서는 공개적으로 누구를 비난하거나 인신공격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물론 참견 문화에 의해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흔하지만, 개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을 할 경우는 거꾸로 그 사람이 회사에서 매장된다. 오히려 구글에서는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문화가 강하다. 어떤 직원이 성과를 내거나 도움을 준 경우, 그에 대해 매니저나 동료 직원이 축하하고 칭찬하는 메일을 뿌리고 거기에 많은 이들이 전체 답장으로 화답하면서 훈훈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러한 분위기는 자신도 성과를 내고 이러한 칭찬을 받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하게 된다.

구글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투명한 업무 환경과 평가제도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정보가 공유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어떤 사람이 어떤 업무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다 파악할 수가 있다. 분기마다 있는 평가철에는, 360도 다면 평가로 기본 평가점수가 매겨지며, 이에 대한 조정은 한 조직의 매니저들이 모두 한데 모여 소속 직원들 전체를 한명씩 비교해 가며 이루어진다. 그 자리에서 엔지니어의 경우 작성한 소스 코드까지 리뷰하게 되며, 주변 동료들이나 타 부서와 마찰을 일으킨 사례등도 모두 공개된다. 자기 보스에게만 잘 보인다고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구글 직원들은 회사에서 행하는 모든 업무, 행동, 주고받는 메일 하나하나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는, "발가벗겨져 일하는 기분"으로 일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구글 직원들은 구글에 다니는 것이 몹시 자랑스럽고, 대단히 만족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짜 밥을 비롯한 각종 복지 혜택, 심지어 구글 직원이 사망할 경우 연봉의 50%를 10년간 지급하기까지, 회사는 곳곳에서 직원들을 배려하고 더 좋은 직장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직원들 역시 회사가 무엇을 해주기만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고, 구글의 문화를 만들어 나간다.

맺음말

몇가지 관점에서 애플과 구글의 문화를 비교해 보았는데,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회사 모두 역사에 남을 최고의 회사를 만들어 냈다. 아무래도 개인적으로는 구글의 문화에 좀 더 매력을 느끼게 되지만, 아무래도 겉에서 보는 모습일 뿐이니, 어느쪽이 더 좋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회사들이 이 두 회사의 성공을 부러워하며 또 많은 것들을 찾아내고 벤치마킹하려 하지만, 사실 회사의 문화라는 것은 모든 업무 환경과 HR 제도, 회사의 가치관과 제품, 직원들의 태도 등 모든 것이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좋아 보이는 몇가지를 떼어다 적용한다고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회사의 모든 제도와 가치관을 통째로 가져와 내 회사에 적용한다는 것은 실천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른 회사에서 어떻게 하는지 배우기 전에, 내 회사는 어떤 가치관에 의해 어떤 문화를 갖고 있고, 그것이 서로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가며 회사를 발전시키고 있는지 차분히 바라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애플과 구글 못지않은 최고의 기업이 생겨나고 더 많아지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