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7일 수요일

영어 전문가 아닌 일반인의 영어 학습법

미국에서 산 지 이제 3년이 넘었다. 처음 미국에 올 때 품었던, 지금쯤이면 영어를 네이티브 수준으로 구사하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사실 깨진지 오래다. 그리고 절대 영어는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당연한 진리를 몸소 확인했다. 미국 와서 미국 물 먹고 미국 공기 마셔도 영어는 안된다. 영어는 "해야" 는다.

아직 형편없는 영어 수준이지만, 그리고 수많은 영어 고수들이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조언과 방법론을 제시했기에 굳이 더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유명 영어 강사나 저자가 아닌 나같이 평범한 주변 사람이 해주는 조언도 의미가 있을 수 있기에, 그동안 나름 느낀 영어공부에 관한 포인트들을 한번 정리해볼까 한다.

1. 영어는 장기전이다. 영어를 즐겨라.

성인이 되어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영어에 노출되는 절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이든 최고가 되려면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매일 하루에 10시간씩 투자하면 1년에 약 3천6백 시간, 약 3년 정도면 대략 1만 시간에 도달한다. 영어에 대해서 이 법칙을 적용해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원어민 수준이 된다"고 가정하면, 매일 10시간씩 영어를 하면 3년 정도면 도달 가능한 셈이다.
그런데 성인으로서 직장이 있고 사회생활이 있고 할 일이 있는 사람들이 하루에 10시간씩 영어를 공부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기껏해야 한두 시간이면 많이 내는 편일 것이다. 하루 한시간이면 1만 시간이 되려면 30년이 걸리고, 두시간이면 15년이 걸린다. 새해 목표에 영어공부를 채워 넣어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하루에 한두 시간도 매일 빠짐없이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야근으로 빠지고, 회식으로 건너뛰고, 한두달 반짝 잘 하다가 출장 때문에 흐름 깨지고... 이런 식이면 결국 30년이 걸려도 1만 시간은 커녕 1천 시간 채우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작심해서 해야 하는 "공부"가 아니라, 영어로 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들고 그것을 즐겨야 한다. 미드를 보든지, 책을 읽든지, 채팅을 하든지, 친구를 사귀든지, 뭐든 몇년 동안 꾸준히 즐겁게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즐거워야 장기간 꾸준히 할 수 있다. 의지력에만 의존해서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한다면 지속하기가 무척 힘이 들고, 아마 성과도 거의 없을 것이다.
서점에 가면 수많은 영어공부 방법론 책들이 있는데, 저마다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맞고,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틀렸다. 영어에는 왕도가 없다고 흔히들 이야기하는데,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제각각 자기에 맞는 방법으로 영어를 익히고 배운 것이고, 사람마다 맞는 방법은 다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남이야 뭐라든, 내가 즐겁고 오랫동안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게 나에게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평생 취미라 생각하고 즐기면 된다.

2. 쉬운 것부터 시작해 수준을 높여가라.

시작은 약간 쉬운 것, 최소한 자기 수준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수준에 맞는다는 것은, 큰 어려움 없이 그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책을 읽는다고 하면,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수십개씩 나와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는 무슨 말인지 짐작도 안되는 책이라면 결코 즐길 수가 없다. 사전 뒤지다 시간 다 보내고, 사전에서 단어를 다 찾아봤는데도 여전히 문장은 이해가 안돼서 답답할 수도 있다. 사전을 찾지 않고도 읽어 나가면서 대략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읽기 자체를 즐길 수 있을 것이고, 간혹가다 정 궁금할 때 한번씩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줄 것이다.
모든 배움의 과정에는 단계와 수준이 있다. 수영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을 수 미터 깊이의 풀이나 바다에 던져놓고 혼자 알아서 해보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 어차피 처음에는 기본 자세를 익히고, 물에 익숙해지고, 체력을 훈련하는 것이 목표인데, 깊은 물 속에서 배워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물 속에서의 움직임과 기본 자세가 몸에 익고, 체력이 어느 정도 길러져 몇십미터 이상 쉬지 않고 수영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진 후라면, 깊은 물에 던져 놓아도 즐겁게 수영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 "영어의 바다에 뛰어드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내 실력보다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영자신문이나 미드, 원어민 프리토킹반 등에 뛰어들었다가 좌절감만 느끼고 곧 포기하게 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3. 남과 비교하지 마라.

한국인들에게 영어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서로 영어 성적과 영어 실력을 가지고 비교당하면서 커 왔고, 그래서 영어를 하면서 항상 남을 의식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영어가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외국인들과 있을 때는 그럭저럭 영어를 잘 하다가도, 모임에 한국 사람이 끼거나 주변에 한국 사람이 지켜보고 있으면 갑자기 초긴장모드로 들어가 버벅대거나 아예 입을 닫는다.
엉터리 발음과 문법으로 더듬더듬 영어를 말하는 것은 영어를 배우는 모든 사람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완벽한 영어를 거침없이 말하게 된 경우는 없다. 원어민들은 어린 아이 때, 나이 들어서 영어를 배운 사람들은 배우기 시작했을 때, 모두가 다 엉터리 영어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영어를 창피해하고, 그래서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유창한 원어민 수준의 영어가 우리 입에서 튀어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영어가 엉망이라고 영어를 하지 않으면 영원히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길가다 눈에 띄는 외국인에게 다짜고짜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로 말을 걸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어느정도 영어 단어도 좀 알고 문법도 좀 알고 표현도 좀 알고 대충이라도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상태라면, 남과 비교하거나 남을 의식하지 말고, 의사소통을 위한 영어를 하라는 것이다. 영어를 남과 비교하는 척도로 생각하지 말고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례 가운데 단기간에 영어 말하기 실력이 폭발적으로 확 늘었던 경우는, 이 자의식을 극복한 경우들이다. 즉 문법이나 독해 실력은 뛰어나고 시험 영어는 좋은 성적을 받지만, 과잉 자의식으로 인해 어려운 표현을 어려운 어휘로 표현하려다가 말이 꼬이고, 창피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기회가 있어도 입을 닫던 분들인데, 얼굴에 철판 깔고 문법이야 틀리든 말든 애들 수준의 영어든 뭐든 의사소통에만 집중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되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더 영어를 많이 쓰게 되고, 그렇게 6개월 정도만 지나면 몰라보게 말이 늘게 된다. 어찌 보면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이 영어공부에 있어 갖는 장점의 90%는 이 부분이 아닌가 싶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영어를 써서 내 의사를 표현해야만 하는 상황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자꾸 주어지다보니, 점점 영어를 하는 내 자신이 익숙해지고 자의식보다는 의사소통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듯하다. "그런 원론적인 이야기는 지겹도록 들었다는! 도대체 뭘 어떻게 공부해야 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달라는!" 그런데 그런 방법은 없다. 내가 그런 방법을 알고 있다면 나 자신이 벌써 원어민 수준이 되었을 것이고, 책도 내고 영어 강사로 일년에 수억씩 벌고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마시길. 몇년 동안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보면서 이제 어느정도,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하고, 또 시간 대비 가장 효율적이라고 믿는 그런 방법을 몇가지만 알려드리도록 하겠다. 나 역시 아직도 계속 이 방법들로 공부하는 중이고, 그 외에 다른 것들도 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아래 방법이나 다른 방법들을 시도해 보고, 이리저리 다양하게 바꿔보고, 자기 몸에 맞는 방법을 찾아서 계속하면 된다.

1. 책을 읽어라.

영어공부에 있어서 책읽기의 중요성은 백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저명한 언어학자이며 "크라센의 읽기혁명"의 저자인 스티븐 크라센 박사는 "다독은 언어를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방법이다"라고까지 했겠는가. 듣기에 있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읽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단어는 다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쓰기와 말하기도 읽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일정 수준에서 더이상 발전이 없어진다. 더군다나 영어의 여러가지 영역 중에서 가장 쓸모가 많고 실생활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은 읽기일 것이다. 그런데 읽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읽어야 할까?

(1)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라.

솔직히 처음 미국에 와서 유치원생, 1학년용 책을 읽었을 때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 한두개 이상씩 계속 나온다. 거기다 단어는 다 아는 거 같은데 문장이 무슨 말인지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싶은 경우도 한 챕터에 몇번씩 나온다. 한번 쓰윽 읽으면 이해가 잘 안되고, 천천히 왔다갔다 하면서 읽거나 생각하면서 읽어야 '아하, 그 뜻이구나'하고 뒤늦게 이해되는 문장은 셀 수가 없이 많다. 한국에서 학교는 다닐만큼 다니고, 나름 영어공부도 꾸준히 해 왔다고 자부했었는데 미국 유치원생 책도 어렵다니... 아래는 유치원 혹은 1학년생 수준인 Junie B Jones라는 유명한 책의 1권에서 일부 발췌한 것이다.

The bus made a big roar. Then a big puff of black smelly smoke came out the back end of it. It's called bus breath, I think.
Mr. Woo drove for a while. Then the brakes made that loud, screechy noise again. I covered my ears so it couldn't get inside my head. 'Cause if loud, screechy noises get inside your head, you have to take an aspirin. I saw that on a TV commercial.
Then the bus door opened again. And a dad and a boy with a grouchy face got on.
The dad smiled. Then he plopped the grouchy boy right next to me.
"This is Jim," he said. "I'm afraid Jim isn't too happy this afternoon."
The dad kissed the boy good-bye. But the boy wiped it off his cheek.

사실은 이것보다 더 쉬운 책이 있다면 그게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더 쉬운 것을 구할 수 없다면 이정도도 괜찮다. 만약 어휘나 문법이 탁월하고, 영어책을 이미 많이 읽어온 분들은 당연히 더 어려운 책을 고르시면 된다. 개인적인 수준은 천차만별이겠지만, 대략적으로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 두세개가 넘지 않는 수준의 책을 고르면 된다고 본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원서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으므로 다양한 선택이 가능할 것이다. 어떤 책이 어떤 수준인지는 본인이 직접 읽어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지만, 대략적으로 자신의 수준을 알고 있다면 어린이용 도서에 대해 리딩 레벨을 정리해 놓은 아래 글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 외에도 아이들 영어 독서에 대해 보물창고와도 같은 블로그이니 참고하시길. 이 많은 책의 표지와 리딩 레벨을 보기 좋게 테이블로 정리해 놓은 아이걸음님의 노력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리딩 레벨 (Reading Level) - 리딩 레벨 찾는 법과 리딩 레벨 단계별 유명한 책들

(2) 들으면서 따라 읽어라.

영어는 외국어이다. 그러므로 원어민이 말하는 방식이 옳은 것이다. 물론 원어민과 똑같이 될 필요까지는 없다. 원어민끼리도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원어민이 말하는 방식을 가능한 한 많이 따라할 수 있다면 한국식 발음과 억양을 고집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말로 된 책은 오디오북이 드물고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다행히 영어 오디오북은 그 양도 풍부하고 쉽게 구할 수 있다.
모든 책에 대해 이렇게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만약 오디오북을 구할 수 있다면, 한두권이라도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원어민의 발음과 억양, 그리고 어디서 끊어 읽는지를 유심히 들으면서 똑같이 따라 읽는 것이 좋다.
오디오북은 어둠의 경로로도 구할 수 있지만, 고전의 경우는 무료 오디오북을 제공하는 웹사이트나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도 된다. Books Should Be Free라는 사이트는 3000여개의 오디오북, e북 등을 무료로 제공하며, 각종 스마트폰과 킨들 등을 지원한다. 아마존 자회사인 audible.com은 내가 애용하는 오디오북 서비스인데, 최근들어 많은 책들이 킨들 e북과의 싱크도 지원되고 킨들 e북과 함께 구매할 경우 상당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3) 소리를 내면서 읽어라.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따라 읽을 때는 물론이고, 오디오북 없이 그냥 책만 읽을 때에도 가급적 입을 열어 소리를 내면서 읽는 것이 좋다.
우리의 입과 혀는 생각보다 영어에 익숙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로 따로 단어 하나씩은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더라도 문장에 들어가면 혀가 굳어져 제대로 된 영어 발음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운동과 마찬가지로 근육을 훈련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이론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안다고 해도 오랜 시간 훈련하지 않으면 원하는 발음은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 근육을 훈련시킨다는 목적에서는, 말하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은 똑같다. 따라서 발음 훈련을 위해 누군가와 장시간 대화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책을 소리를 내서 읽으면 된다.
리양의 미친 영어처럼 고함치며 읽을 필요는 없다. 그냥 소리를 내서 읽으면 된다. 너무 큰 소리를 내면 목이 아파서 오래 하기가 어렵다. 단, 속삭이듯 성대를 울리지 않고 작게 내는 소리는 효과가 적다. 다른 사람에게 읽어주는 정도, 즉 평소 대화할 때 내는 그정도의 크기로, 성대를 울리며 읽으면 된다.

(4) 의미 단위로 끊어서 읽어라.

책을 읽다보면 자꾸 빨리 읽고 싶어진다. 그러나 빨리 읽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특히,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입으로 단어만 우물거리고 있다면 책을 읽는 의미가 없다. 무슨 뜻인지 명확히 이해하면서 읽어 나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의미 단위로 끊어서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즉 의미 단위 안에서는 단어들을 죽 붙여서 읽고, 의미 단위 끝에서는 잠시 (1초) 멈추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확실하게 멈추는 것이다. 어디서 끊는지를 명확히 하면, 말할 때에도 의미 단위에서 끊어서 말하는 것이 습관화가 가능하다.
만약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고 있는 경우에는 조금 더 어려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데, 눈으로 의미 단위를 재빨리 확인하고, 입으로 읽을 때는 방금 확인한 내용을 보지 않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아마 한 문장을 몇번씩 반복해서 연습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마주치는 모든 문장에 대해 이렇게 하면 금방 지치고 피곤해지므로, 간혹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났을 때 간간히 시도해 보기 바란다.
의미 단위에서 끊어서 말하는 것의 중요성은 "영어 스피킹 기적의 7법칙"이라는 책에 잘 나와 있다. 책 소개는 여기를 참고하시길.

(5) 반복해서 읽어라.

보는 대로 기억하는 세기의 천재가 아니라면, 한 책을 한번 읽어서 남는 것은 줄거리밖에 없다. 물론 재미를 고려해야 하므로 똑같은 책을 지겹도록 수십번씩 반복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영어를 익히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면 적어도 두번은 연거퍼 읽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잊을 만할 때 또 한두번씩 읽어주면 된다.
두번, 세번 읽는 동안에 처음에는 내용 이해하기에 급급했던 책이, 점점 생생하게 느껴지고 한문장 한문장을 공감하며 읽을 수 있게 된다. 처음에 읽을 때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던 문장이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이해되기도 한다. 잊을 만할 때 다시 읽어보면, 예전에 몰랐던 단어들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다른 책에서 봤던 단어들, 표현들을 발견하며 '아, 이런 단어가 여기 나왔었구나'하는 느낌도 받는다. 줄거리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거꾸로 다음에 나올 이야기들을 예측하며 '이런 진행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라면 온갖 머리를 쥐어짜내가며 어렵게 표현했을 장면이나 사건에 대한 묘사를 아주 깔끔하게 표현한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하게 되기도 한다. 그 와중에 몇가지의 단어나 표현들은 자기의 것으로 남는다. 이 모든 것들이 책을 한번만 읽는다면 얻기 어려운 것들이다.

(6) 많이 읽어라.

하나의 책만 수십번 읽어서 마스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나는 그 시간에 여러 권의 책을 서너번 정도 읽는 것을 더 선호한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일단 너무 많이 반복하면 지겹기 마련이고, 또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하나의 책이 제공해 줄 수 있는 영어 어휘와 표현은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외국인이 당신에게 "한국어를 마스터하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한 권만 추천해 주세요."라고 묻는다면 무슨 책을 추천하겠는가? 아마도 "한 권만 읽어서 한국어를 마스터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책을 많이 읽으세요."라고 답변하지 않겠는가?
많이 읽다 보면 어떤 책은 수십번까지 읽게도 될 것이고, 어떤 책은 한번도 끝까지 못 읽고 중간에 덮게 될 것이다. 굳이 어려운 책, 잘 읽히지 않는 책을 끌어안고 씨름할 필요가 없다. 쉬운 책, 잘 읽히는 책도 많다. 어린이 동화책보다 자기계발류의 책이 오히려 더 잘 읽힐 수 있다. 재미있는 책,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골라서 많이 읽으면 된다.

2. 혼잣말을 하라.

만일 매일 영어로 일기를 쓰실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그렇게 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나 그건 나도 못하고 있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일기란 녀석은 하기는 싫지만 숙제라서 억지로 해야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서 그런 게 아닐까? 아무리 좋아도, 꾸준히 즐기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일은 소용이 없기 때문에, 나는 영어로 일기쓰기를 추천하지는 못한다. 대신,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일로 "영어로 혼잣말하기"를 추천한다. 사실 이건 말 그대로 혼잣말이기 때문에, 별다른 노하우도 필요없다. 그냥 하면 된다. 구태여 사족을 달자면 이런 것들이다.

(1)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라.

하루 중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 중 특별히 어떤 것에 집중하지 않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흘려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런 시간들을 영어공부에 활용하면 어떻게 될까?
혼잣말하기는 자투리 시간에 별다른 부담없이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특별한 형식도 없고, 특별한 노력도 필요 없다. 그냥 평소에 혼자 하던 공상, 혹은 혼잣말을 이제는 영어로 한번 해 보는 것이다. 듣는 사람도 없고, 눈치 줄 사람도 없다. 혼자만의 공간에 있다면 입으로 소리 내서 해도 되고, 공공 장소나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면 마음 속으로 말하면 된다. 예를 들어 '여기 덥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하고 한국말로 생각할 것을 영어로 'It's hot here. Why are there so many people here?'하고 영어로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혼자서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 좀 어색하다면, 가상의 인물을 앞에 놓고 그 사람에게 말하듯이 이야기해도 된다.

(2) 문법, 발음에 신경쓰지 마라.

자신에게 말하든 가상의 인물에게 말하든 혼자 말하는 것이니 문법도 신경쓸 필요 없고, 발음도 신경쓸 필요 없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영어로 바꿔보는 연습을 계속 하면 되는 것이다. 완전한 문장이 안 만들어지면 그냥 대충 단어를 떠올리고 넘어가도 된다. 'It's hot. So many people.' 뭐 이렇게만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나중에 많은 책을 읽고 어휘와 표현이 풍부해지면 얼마든지 더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3) 상황을 묘사하라.

막상 영어로 혼잣말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일어나는 현상이 있다.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한국말로는 종횡무진 날아다니던 머리가 갑자기 멈춰버린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 미리 생각할 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음번 영어 학원이나 스터디 그룹에서 토론할 주제를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머리 속의 추상적인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 것은 사실 어렵다. 처음에는 동성 결혼을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정리하거나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기보다는 지하철 앞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그 옆의 아저씨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것이 더 쉽다.

(4) 메모하라.

영어로 혼잣말을 하다 보면 분명 막히는 순간이 온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영어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는 정확하게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돌려서 설명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딱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그것, 딱 들어맞는 영어 표현이 있을 것만 같은 그 단어나 느낌을 메모해 두었다가 나중에 사전이나 인터넷을 찾아보면, 아마도 그 단어나 표현은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사전이나 인터넷 검색으로도 찾을 수 없는 것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다 잘하는 사람에게 질문하면 된다. 평소에 그런 사람 한명은 꼭 알아놓는 것이 좋다.

글을 마무리하며...

글은 길어졌지만 결국 내가 추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딱 두가지밖에 없었던 것 같다. 책읽기와 혼잣말하기. 이미 많이 알려진 방법들이고, 다른 분들도 다들 추천하시는 방법들이다. 이 두가지를 위에 덧붙인 팁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하면서, 또 본인에게 맞는 다른 공부 방법들 (미드 보기, 뉴스 청취 등)과 함께 꾸준히 장기적으로 즐기면서 한다면 분명히 발전이 있으리라 믿는다. 모두들 영어로 막힘없이 의사소통하는 그날을 위하여 건투를!

2013년 3월 21일 목요일

블로그를 시작하며

일전에 페이스북에서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라는 이화여대 오욱환 교수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은 비록 기업체에서 학문과는 거리가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만약 내가 어릴 때의 장래희망이었던 과학자, 즉 과학이란 학문을 하는 사람이 되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는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등등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만약 아직 안 읽어보신 분이 있다면 일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무엇보다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충고는 "시작하는 절차를 생략하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깨닫기 위해 조금 시간이 필요한 표현이지만, 곱씹어 볼수록 이 충고가 얼마나 핵심을 찌르고 있는지 알게 된다. 논문을 쓰는 것에 한정해서 하신 말씀이겠지만, 논문에만 국한될 조언이 아니다. 우리 삶에서 가치있는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이것저것 핑계를 대면서 "시작"을 하지 않아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언젠간 해야지.'하면서 마음에 부담을 안고 있으면서도,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다음달 출장만 갔다 오고 나면...', 이런 식으로 자꾸 시작을 미룬다. 그런데 막상 그런 바쁜 일들이 끝나고 약간 여유가 생겨도, 이번엔 또 다른 핑계를 대며 시작을 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내가 '블로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지 벌써 수년이 흘렀다. 그런데 왜 나는 블로그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내가 깨닫게 된 대답은 바로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제공하는 플랫폼은 여러가지가 있다. 네이버나 다음같은 포털을 이용해도 되고, 티스토리같은 블로그 전문 사이트, 워드프레스같은 전문가용 사이트, 그리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구글의 블로거도 있다. 일단 블로그를 "시작"하려면, 이중에 어떤 곳이 나에게 맞는지 결정해야 하고, 그러려면 각 사이트의 장단점을 파악해야 하고, 그러려면 내가 왜 블로그를 하려고 하는지 명확히 해야 하고, 그러려면 내가 뭘 알고 있고 무슨 글을 쓸 수 있는지, 블로그를 통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하고.... 이쯤되면 귀찮음이 물밀듯이 밀려오게 되고 또 다음으로 미루게 된다.

무언가 쓰고 싶은 내용이 떠올라도, 당장 내 블로그가 없고, 블로그를 시작하는 일은 힘들기 때문에, 결국은 글을 쓰지 않고 넘어가게 된다. 하루 정도가 지나면, 안타깝게도 글로 쓰고 싶었던 그 생각과 아이디어는 그냥 없어져 버린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한두줄 남기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140자 안에 쓸 수 있는 내용은 그냥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잠시 잡아서 적는 것 뿐이다. 깊이 있게 내용을 발전시킬 수도 없고, 좀더 찾아보고 정리하며 나중에도 참고할 만한 나의 지식 창고로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내 진짜 문제는 블로그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블로그를 제대로 정의하고, 그에 맞는 사이트를 선택하는 일, 블로그를 제대로 시작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내 문제는 블로그를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않았다는 데 있는 것이었다. 꼭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고, 블로그가 아니어도 에버노트에 써도 되고, 그냥 피씨에서 워드나 아니면 아웃룩을 이용해도 되는 것을...

오욱환교수님의 글을 읽고 나서, "시작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일단 아무 곳이든지 글을 쓰고 보자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고나니 역설적이게도, 블로그를 시작하는 절차가 그렇게 힘들거나 거추장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블로그 만들기"라는 키워드로 네이버와 구글에서 한번씩 검색해 보고, 글 두개 정도씩을 읽고나서 그냥 구글 블로거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바로 블로그를 만들었다. 아마 10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그동안 그토록 어려워한 것이다. 아니, 어려워했다기보다 핑계를 대고 피해왔던 것이다.

앞으로 이 블로그에 무엇을 채워나가게 될지 아직은 나도 확실히 모르겠다. 아마도 외국 생활, 특히 실리콘밸리에 살면서 겪거나 느낀 점들, 모바일 업계의 소식이나 동향에 대한 내용, 영어 공부에 관련된 글들이 주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블로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언젠간 해야지.'하고 마음 먹었던 일들은 시작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단 하고 봐야겠다는 것이다. "Just Do It."은 이럴 때도 써먹을 수 있는, 짧으면서도 참 좋은 말이다. Just Do It!